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창세(昌世). 유준(柳浚)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중광(柳重光)이다. 아버지는 유찬(柳燦)이며, 어머니는 승지 황혁(黃赫)의 딸이다. 정충신(鄭忠信)의 문인으로 일찍이 문장을 성취하였다.
1657년(효종 8)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봉상시주부(奉常寺主簿)가 되었다. 이어서 판관을 지내고 전적(典籍)을 거쳐, 교서관교리가 되었다.
얼마 뒤 양재찰방(良才察訪)을 지내고 은산·강동·흥해·상원의 군수를 거쳐, 1671년(현종 12) 창원부사가 되었다. 승진이 급하다는 평을 받고 체차당하였으나, 그 뒤 사복시첨정(司僕寺僉正)에 이르렀다.
예법에 구애되지 않고 갑자기 어려운 일에 부딪혀도 빈틈없이 처리하였다. 그러나 남을 인정하거나 뒤를 따르지 않아 세상과 뜻이 어긋나는 일이 많았다. 홍서봉(洪瑞鳳)·이후원(李厚源)과 깊이 사귀어, 공사간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자문에 응하여 일을 잘 처리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