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언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상해에서 국민대표회의 헌법개정위원, 교육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칭
이칭
해동(海東), 김세진(金世鎭)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95년(고종 32)
사망 연도
1945년
출생지
경상북도 안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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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상해에서 국민대표회의 헌법개정위원, 교육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일명 해동(海東)·김세진(金世鎭). 경상북도 안동 출신. 1919년 3·1운동 당시 향리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주도, 독려한 뒤 상해(上海)로 망명하였다.

1919년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에 합류하였다가 군자금모금이 독립운동을 가장 능률적으로 돕는 일이라 여기고 입국하였다. 국내에서 유성우(柳性佑) 등과 긴밀히 상의하고 군자금조달을 위하여 경상북도 안동·문경·상주 일대에서 현금 310원과 현금증표 5,000원을 모금한 뒤 만주로 건너갔다.

1922년 12월 길림교육회(吉林敎育會)의 운영을 도맡아 교육을 진흥시키면서 표면상 고려공산당(高麗共産黨)에 가입하여 시기를 관망하였다. 1923년 1월 상해에서 2년 전부터 소집하기로 한 국민대표회의(國民代表會議)에 참석하여 헌법개정위원과 교육위원장에 선임되어 군자금모금과 독립운동에 관한 제반문제를 외국과 교섭하였다.

그 결과 군기조달을 위한 회의 대표위원으로 활약하였다. 1923년 만주 장춘(長春)에서 임시정부와 업무연락을 비밀리에 추진하다가 일본경찰에 잡혀 1924년 10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상훈과 추모

198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임시정부사』(이현희, 집문당, 1982)
「대구지방법원판결문」
집필자
이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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