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흥양(興陽). 자는 약이(瀹而). 유충관(柳忠寬)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탱(柳樘)이다. 아버지는 예조참판 유몽인(柳夢寅)이며, 어머니는 신식(申栻)의 딸이다.
1605년(선조 38) 진사시에 합격하고, 음보(蔭補)로 등용되어 용양위부사과(龍驤衛副司果)가 되었다.
1613년(광해군 5)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615년 사가독서하고 이어 설서(說書)·검열·병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이듬해 헌납(獻納)으로 다시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교리(敎理)·형조정랑 등 요직을 지냈다.
정인홍(鄭仁弘) 등의 사주를 받아 폐모론을 주장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왕위에서 물러나고 이이첨(李爾瞻) 등이 모두 처형당하게 되자, 아버지와 함께 죽음을 당하였다. 1794년(정조 18) 아버지와 함께 신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