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안동 출신. 1919년 중국으로 망명한 김영기(金榮基)로부터 상해(上海)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어 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나 군자금이 모자라기 때문에 상당히 곤경에 처해 있음을 듣고, 안동지방을 중심으로 간도에 있는 독립단 발행의 공채로 군자금 모금에 힘쓰다가 일본경찰에 잡혀 1920년 12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1926년 2월 계속하여 경상북도 영덕지방에서 임시정부 군자금조달을 위하여 손영학(孫永學)과 모의, 조규한(趙圭漢)의 집에서 1만원을 요구하다가 일본경찰에 잡혀 1926년 10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1982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