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덕순(德純), 호는 월봉(月峰). 유헌(柳軒)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세린(柳世麟)이다. 아버지는 참봉 유의(柳儀)이며, 어머니는 노첨(盧僉)의 딸이다. 영의정 유영경(柳永慶)의 형이다.
1559년(명종 14) 별시 문과에 장원급제하였으며, 부수찬(副修撰)·정언(正言)·병조좌랑·전적(典籍)·헌납(獻納) 등을 거쳐 1565년에 평안도도사가 되었다. 그러나 권신 이량(李樑)에게 아부하였다는 탄핵을 받아 이듬해에 파직되었다. 1589년(선조 22) 강원도관찰사·승문원제조를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강원도관찰사로 춘천에 있었다. 이때 조방장 원호(元豪)가 여주 벽사(甓寺)에서 왜군의 도하를 막고 있었는데, 격서(檄書)를 보내어 본도로 호출함으로써 적의 도하를 가능하게 하는 실책을 범하였다. 1593년 도총관·한성부우윤을 역임하고, 다음해 진휼사(賑恤使)가 되었으나 언관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호군·연안부사가 되고, 2년 뒤 병조참판·경기도관찰사를 역임하였으며 1600년 예조참판으로 치사하였다. 시문에 능하였다. 저서로는 『월봉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