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량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에 판각문사, 지다방사, 상서좌복야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담연(湛然)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150년(의종 4)
사망 연도
1229년(고종 16)
본관
무송(茂松)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판대부사재사|태자첨사|판각문사|지다방사|상서좌복야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고려 후기에 판각문사, 지다방사, 상서좌복야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무송(茂松)이며, 자는 담연(湛然)이다.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 유필(庾弼)의 아들이며, 공부시랑 유응규(庾應圭)의 아우이다. 성품이 장중하고 말이 없었다고 한다.

생애 및 활동사항

1165(의종 19) 16세 때부터 유가(儒家)의 자제들과 교우하였으나 무인(武人)들과도 교제를 하여, 정중부(鄭仲夫)의 난 때 화를 면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와 교우하던 사람들도 모두 화를 면하였다.

음보(蔭補)로 수궁서승(守宮署丞)이 되었으며, 이어 대악서승(大樂署丞)을 거쳐 용강현령(龍岡縣令)이 되어서는 행정을 밝게 잘 처리하였다고 한다. 이후 상의봉어(尙衣奉御) · 시어사(侍御史) · 호부낭중 · 어사잡단(御史雜端)을 거쳐 대부소경(大府少卿) · 병부시랑 · 형부시랑 · 대부경(大府卿) · 지삼사사(知三司事) · 판대부사재사(判大府司宰事) · 태자첨사(太子詹事) · 판각문사(判閣門事) · 지다방사(知茶房事)를 역임하였다.

1213년(강종2)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가 되어 치사(致仕)하였다. 치사 후에는 은퇴한 재상들과 기로회(耆老會)를 만들어 활동하다가 1229년(고종 6) 8월 세상을 떠났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