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무송(茂松)이며, 자는 담연(湛然)이다.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 유필(庾弼)의 아들이며, 공부시랑 유응규(庾應圭)의 아우이다. 성품이 장중하고 말이 없었다고 한다.
1165(의종 19) 16세 때부터 유가(儒家)의 자제들과 교우하였으나 무인(武人)들과도 교제를 하여, 정중부(鄭仲夫)의 난 때 화를 면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와 교우하던 사람들도 모두 화를 면하였다.
음보(蔭補)로 수궁서승(守宮署丞)이 되었으며, 이어 대악서승(大樂署丞)을 거쳐 용강현령(龍岡縣令)이 되어서는 행정을 밝게 잘 처리하였다고 한다. 이후 상의봉어(尙衣奉御) · 시어사(侍御史) · 호부낭중 · 어사잡단(御史雜端)을 거쳐 대부소경(大府少卿) · 병부시랑 · 형부시랑 · 대부경(大府卿) · 지삼사사(知三司事) · 판대부사재사(判大府司宰事) · 태자첨사(太子詹事) · 판각문사(判閣門事) · 지다방사(知茶房事)를 역임하였다.
1213년(강종2)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가 되어 치사(致仕)하였다. 치사 후에는 은퇴한 재상들과 기로회(耆老會)를 만들어 활동하다가 1229년(고종 6) 8월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