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돈 ()

유창돈
유창돈
언어·문자
인물
해방 이후 『언문지주해』, 『국어변천사』, 『이조어사전』 등을 저술한 학자. 국어학자.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18년
사망 연도
1966년
본관
강릉(江陵)
출생지
평안북도 의주
관련 사건
한국전쟁
정의
해방 이후 『언문지주해』, 『국어변천사』, 『이조어사전』 등을 저술한 학자. 국어학자.
개설

본관은 강릉(江陵). 평안북도 의주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1940년 선천의 신성중학교(信聖中學校)를 거쳐 1943년에 일본의 주오대학 전문부 법과를 수료하고 같은 대학 법학부에 입학, 1945년 같은 대학 법학부를 2년 중퇴하였다. 광복 직후 신의주에서 중학교 교사로 있다가 월남하여 서울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1950년 6·25가 일어나자 두문불출하고 고어연구에 뜻을 두어 고금의 국어자료를 섭렵, 자료수집에 전념하였다. 1954년 4월 연희대학교 문과대학 국문학과에서 강의를 시작하여 죽을 때까지 국어학교수로 지냈다. 1955년부터 경희대학교 국문학과 전임강사를 겸직하였으나, 1958년 사임하고 대우교수로 계속 재임하였다.

1965년 3월에 저서 『이조국어사연구(李朝國語史硏究)』로 서울특별시문화상 인문과학부문을 수상하였다. 그는 국어국문학회 총무(1956), 국어학회 회장(1959)으로 피선되어 학회활동을 하는 한편 많은 연구발표를 하였다. 그의 대표적인 저작은 다음과 같다.

『언문지주해(諺文志註解)』(1958)는 유희(柳僖)의 『언문지』의 원문을 싣고, 그 밑에 해제와 번역·주석을 달았다. ≪국어변천사 國語變遷史≫(1961)는 15세기(훈민정음 창제)에서 시작하여 19세기에 이르는 언어현상의 전반을 통시적 관점에서 다룬 것이다. 전체가 3장으로 되어 있는데, 제1장은 음운, 제2장은 형태, 제3장은 정음 이전의 국어(참고편)이다. 전체가 3장으로 되어 있는데, 제1장은 음운, 제2장은 형태, 제3장은 정음 이전의 국어(참고편)이다.

≪이조국어사연구≫(1964)는 15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약 500년간 조선조의 언어현상을 전반적으로 연구한 것이다. 전체가 2장으로 되어 있다. 제1장인 음운사는 앞의 『국어변천사』에서 이미 발표한 내용을 개고한 것이며, 제2장인 형태사에서는 토·어미·접미사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제1장인 음운사는 앞의 『국어변천사(國語變遷史)』에서 이미 발표한 내용을 개고한 것이며, 제2장인 형태사에서는 토·어미·접미사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이조어사전(李朝語辭典)』(1964)은 15세기부터 19세기말까지의 약 500년 간에 걸친 문헌에 나타나는 한글표기의 어휘를 모아 어학적으로 분류, 분석하고 뜻풀이를 한 고어사전이다. 표제어는 약 3만 2000개이며, 문헌제시어는 약 6만 1000개이다. 부록으로는 이두(吏讀)와 참고도서해제가 붙어 있다.

『어휘사연구(語彙史硏究)』(1971)는 위에 든 ≪이조국어사연구≫의 속편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어휘의 역사적인 연구서이다.

참고문헌

『언문지주해(諺文志註解)』(유창돈, 신구문화사, 1958)
『국어변천사』(유창돈, 통문관, 1961)
『이조국어사연구』(유창돈, 선명문화사, 1964)
『이조어사전』(유창돈, 연세대학교출판부, 1964)
『어휘사연구』(유창돈, 선명문화사,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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