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진 ()

유치진(1905-1974)
유치진(1905-1974)
연극
인물
일제강점기 「토막」 · 「빈민가」 · 「소」 등의 작품을 낸 작가. 극작가 · 연출가.
이칭
이칭
동랑(東郞)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5년 11월 19일
사망 연도
1974년 2월 10일
출생지
통영
정의
일제강점기 「토막」 · 「빈민가」 · 「소」 등의 작품을 낸 작가. 극작가 · 연출가.
생애 및 활동사항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1914년 통영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18년 졸업하였다. 1921년 동경 도요야마(풍산) 중학교에 편입해서 1925년 졸업하였다. 다음 해인 1926년 동경 릿쿄(입교)대학 예과를 거쳐, 1927년 영문과에 입학하여 1931년 졸업하였다.

로망 롤랑의 「민중예술론」을 읽고 연극에 뜻을 두고 귀국하여, 1931년 7월 서항석(徐恒錫)‧이헌구(李軒求)‧이하윤(李河潤)‧장기제(張起悌)‧정인섭(鄭寅燮)‧김진섭(金晉燮)‧함대훈(咸大勳)과 함께 극예술연구회를 조직했다. 고골리의 「검찰관」에 출연하는 것을 시작으로 희곡·창작·연기·연출·평론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면서 극예술연구회를 주도하였다.

1934년 일본으로 건너가 삼일극장에 「빈민가」를 공연하였고, 주영섭과 이해랑 등이 주도한 동경학생예술좌의 창립을 후원해 「소」를 초연했다.

극작가로 등단한 것은 희곡 「토막」부터였다. 이후 극예술연구회 시기(1931~1939)에 70여 편에 달하는 연극비평과 희곡비평, 시론, 연극계결산, 희곡창작법과 영화계에 대한 조언 등을 발표하였다. 희곡으로 「빈민가」(1935), 「소」(1935) 등이 대표적인데, 이 가운데 농촌 현실과 식민지 현실을 다루었다.

1940년 12월 조선연극협회 이사에 취임하면서 일제에 협조하였다. 1941년 2월 부여신궁 조영공사에 근로봉사하였으며, 3월 조선연극협회 산하 극작가동호회 회장에 피선되었다. 7월 조선연극협회와 조선연예협회로 양분된 공연예술단체를 통합하여 결성한 조선연극문화협회에서 상임평의원에 임명되었고, 12월 영화기획심의회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1943년 4월 조선문인보국회 이사로 임명되었고, 6월 조선문인보국회 소설희곡부 회장이 되었으며, 10월 조선문인보국회 주최한 결전소설과 희곡 공모 심사원으로 위촉되었다. 1944년 6월 조선문인보국회 극문학부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같은 해인 1944년 11월과 1945년 2월 조선연극문화협회 주최 일어극 각본 공모 심사원으로 위촉되었다.

해방 후 1947년 2월까지 은둔생활을 하다가 1947년 한국무대예술원 초대원장으로 취임하였다. 1948년 서울시 문화위원으로 피선되었다. 1949년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부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56년과 1957년 구미와 동남아를 순방하면서 세계 연극 흐름을 시찰하였다. 1960년과 1961년 대외활동에 전념하여 동국대학교에 연극영화학과를 창설하여 초대 학과장을 맡고 전국극장단체협의회장과 문교부 대학교수자격심사위원에 위촉되었고, 동경에서 열린 아세아영화제 국제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62년 드라마센터를 건립하여 한국연극연구소와 연극학교, 연극아카데미 등 부설기관을 만들었고, 같은 해 전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 초대 회장과 예술원 부회장에 피선되었다. 1963년 동경아세아영화제 국제심사위원,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64년 극단 드라마센터를 창설하였다. 1971년 한국극작가협회 회장으로 선임되었다. 1974년 2월 10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42년 12월 조선연극문화협회 주최 제1회 연극경연대회에 출품한 「대추나무」로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1955년 서울시 문화상과 예술원 예술상을 수상하였고, 1963년 5월 문교부가 주는 문예상, 1967년 3·1연극상을 수상하였다.

참고문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 Ⅳ-10(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현대문화사, 2009)
『친일인명사전』 2(민족문제연구소, 2009)
『한국현대문학대사전』(권영민,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국어국문학자료사전』(이응백·김원경·김선풍, 한국사전연구사, 1998)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이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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