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성백(誠伯). 판서 유진동(柳辰仝)의 증손이며, 아버지는 수군통제사 유형(柳珩)이다.
1618년(광해군 10) 무과에 급제하여 1622년 황해병사에 올랐다. 이듬해 황주목사로 있던 중 폭행을 일삼고 백성에 대한 착취가 심하다는 탄핵을 받고 의금부에 투옥되었다가, 1623년 인조반정으로 풀려나와 다시 기용되었다. 도원수 장만(張晩)의 휘하에서 별장으로 북변수비에 종군하였다.
다음해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키자 좌협장(左協將)으로 출전하여 황주전투에서 패하였으나, 늦추지 않고 도성을 향하는 반란군을 추격하여 길마재[鞍峴]에서 대파하고, 소수의 기병으로 도성을 빠져나가 도망치는 반란군을 추격하였다. 그 전공으로 진무공신(振武功臣) 2등에 책록되고 진양군(晉陽君)에 봉하여졌으며, 평안도병사절도사에 이르렀다. 좌찬성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장의(莊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