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존중(存中), 호는 우천(牛川). 이성현감(利城縣監) 윤정림(尹廷霖)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경산현령 윤희렴(尹希廉)이다. 아버지는 판서 윤선각(尹先覺, 일명 國馨)이며, 어머니는 조선의 개국공신 평양백(平壤伯) 조준(趙浚)의 후손으로 경력(經歷) 조수(趙琇)의 딸이다.
1585년(선조 18)에 진사, 1588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승문원권지정자가 되었다. 이듬해 정여립(鄭汝立)의 옥사가 일어나자, 정여립과 친분이 있다 하여 파직되었다.
뒤에 다시 검열에 선임되고, 1592년 임진왜란 때에는 홍문관정자로 관량어사(管糧御史)·독운어사(督運御史)의 소임을 맡아 군량 공급에 공을 세우고, 왕의 상을 받았다.
1594년 부수찬에 선임되고, 뒤이어 이조좌랑으로 세자시강원사서와 지제교를 겸임하였으며, 이듬해부터는 다시 사예·응교·교리·집의·사간 등의 요직을 역임하였다. 1598년에는 동부승지로 양호찰리사(兩湖察理使)가 되어 군량·마초를 공급하고 뒤이어 충청도관찰사가 되었다.
그 뒤 13년 동안 청주·광주·황주의 목사를 지내면서 양전균역(量田均役)으로 애민(愛民)의 행정을 폈으며, 두번에 걸쳐 판결사가 되고 병조참의도 지냈는데 어디에서나 공평하게 일을 처리하여 명관(名官)으로 알려졌다.
성품이 중후하고 소박하며, 일찍이 권세와 이익을 따라 행동하는 일이 없고, 시비사정(是非邪正)을 논박하는 자리에서는 아주 확실하여 두둔하고 추종하는 일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