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남(海南). 초명은 윤지범(尹持範), 자는 이서(彛敍), 호는 남고(南皐). 윤선도(尹善道)의 7세손으로, 윤두서(尹斗緖)의 증손이다. 아버지는 윤위(尹愇)이다.
서울 청파동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잃고, 1768년(영조 44) 해남으로 낙향하였다.
1777년(정조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나 윤선도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벼슬에 오르지 못하다가, 왕의 특명으로 서용되어 성균관전적·병조좌랑·지평·정언을 지낸 뒤 1797년 임천군수(林川郡守)가 되었다.
1800년 정조가 죽자 사직한 뒤 12년 동안 은거하면서 지냈다. 1812년(순조 12)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이 되고 7년 후 첨지중추부사로 전임되었다. 1819년에 병조참의, 1821년 오위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