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무건(武建). 경상북도 청송 출신.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각지에서 항일의병이 궐기함에 이에 호응하여 정용기(鄭鏞基)를 중심으로 의병진의 구성을 준비할 때 지례·고령 지방에서 활약하였다.
1906년 산남의진(山南義陣)이 조직되고 의병장으로 정용기(鄭鏞基)가 추대되자, 동의진에 입진하여 지례(知禮)·고령(高靈)을 담당하였으며 이초장(二哨長)이 되었다가 후에 도포장(都暑將)으로 임명되었다. 대체로 의성(義城)·청송(靑松)·진보(鎭寶)·장서(長署) 등지에서 적과 교전하였는데 접전할 때는 위난을 가리지 않고 용맹하였다.
1907년 이세기(李世紀)와 같이 장서(長署) 읍을 습격하여 왜적을 전멸시켰을 뿐 아니라, 분파소(分派所)·세무서·우체소·서기청(書記廳)을 방화·소각하는 등의 전과를 올렸다.
1908년 왜장 삼이태랑(森伊太郞)을 사살하고 그의 군도를 노획하여 그후 항시 그 칼을 휴대하고 다녔다.
1909년에는 산남의진의 각부대를 각지로 분파하여 큰 산을 점령하고 유격전을 전개하였는데, 많은 전과를 올렸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