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칠원(漆原). 자는 명여(命汝). 아버지는 윤세추(尹世樞)이다. 이재(李縡)에게서 수학하였다.
1711년(숙종 37)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장련현감(長連縣監)·선전관·산음현감(山陰縣監)을 지냈다.
1728년(영조 4) 정희량(鄭希亮)이 안음(安陰)에서 모반하여 반란을 일으켰을 때, 각처에 격문을 보내 모병하여 반도의 토벌에 힘썼다. 거창의 성초역(省草驛)까지 추격하여 그곳에서 반군을 대파하였다.
그 공로로 원종공신(原從功臣)이 되었으며, 그 뒤 고향 보성으로 돌아가 차군정(此君亭)을 짓고 지냈다. 1730년 북쪽 변방이 소란스러워지자 위원군수에 임명되어 임지를 다스리다 그 해 12월에 죽었다. 죽은 뒤 가선대부(嘉善大夫)·예조참판에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