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교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장련현감, 선전관, 위원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명여(命汝)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76년(숙종 2)
사망 연도
1730년(영조 6)
본관
칠원(漆原, 지금의 경상남도 함안)
출생지
보성
주요 관직
장련현감(長連縣監)|선전관|위원군수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장련현감, 선전관, 위원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칠원(漆原). 자는 명여(命汝). 아버지는 윤세추(尹世樞)이다. 이재(李縡)에게서 수학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11년(숙종 37)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장련현감(長連縣監)·선전관·산음현감(山陰縣監)을 지냈다.

1728년(영조 4) 정희량(鄭希亮)이 안음(安陰)에서 모반하여 반란을 일으켰을 때, 각처에 격문을 보내 모병하여 반도의 토벌에 힘썼다. 거창의 성초역(省草驛)까지 추격하여 그곳에서 반군을 대파하였다.

그 공로로 원종공신(原從功臣)이 되었으며, 그 뒤 고향 보성으로 돌아가 차군정(此君亭)을 짓고 지냈다. 1730년 북쪽 변방이 소란스러워지자 위원군수에 임명되어 임지를 다스리다 그 해 12월에 죽었다. 죽은 뒤 가선대부(嘉善大夫)·예조참판에 증직되었다.

참고문헌

『국조방목(國朝榜目)』
『고산집(鼓山集)』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