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1965. 황해도 은율 출생. 고향에서 보통학교 5학년까지 다니다가 만주로 건너가 심양(瀋陽)에서 졸업하였다.
그 뒤 만주의 가톨릭교회에서 합창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음악에 심취하였다. 당시 심양관현악단의 일본인 지휘자 가네코로부터 틈틈이 작곡·화성학 등을 배웠으나 거의 독학과 음악적 경험으로 합창곡·동요곡 등을 작곡하였다.
광복 후 만주에서 귀국하여 박태현(朴泰鉉)·이흥렬(李興烈) 등과 함께 국민개창운동과 음악가협회 등을 통하여 음악운동을 전개하였다. 채동선(蔡東鮮) 등과 교분이 두터워 죽기까지 먼저 간 채동선의 추모사업을 전개하였다.
6·25 전쟁 때에는 종군작가로서 군가와 「사병의 꿈」 등을 작곡하였고, 국민가요인 「민족의 노래」·「광복절의 노래」 등은 격동기에 많이 불린 노래들이다.
대표작으로는 가곡으로 「보리밭」·「동백꽃」·「한가윗 달」 등이 있고, 「나뭇잎 배」·「무지개다리」 등의 동요를 작곡하여 동요작곡가로서도 평가를 받았다.
그 밖에 미완성 오페라로 「견우직녀」, 오페레타 「해바라기 노래」, 교향곡 「개선」, 교성곡 「조선의 사계」 등이 있으나, 그의 작품영역은 가곡세계가 중심이 되고 있다.
서정적 멜로디가 그의 특색이고, 가난과 비극성 주벽 등이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으나, 가톨릭신자로서의 신앙과 순수성을 지니면서 암흑과 고뇌의 시대를 살다 간 작곡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