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처음 이름은 윤사강(尹思康)이다. 한때 중이 되었다가 장죄(贓罪)를 범하고 명나라로 도망하여 이름을 윤이(尹彛)라고 바꾸었다.
1390년(공양왕 2) 명에서 이초(李初)와 함께 당시 이성계(李成桂)가 옹립한 공양왕은 종실이 아니라 이성계의 인친(姻親)이라는 것과, 이성계 등이 장차 명을 치려 한다는 것, 그리고 이색(李穡) 등 고려의 재상들이 이에 반대하였다가 유배되거나 살해되리라는 것 등을 고소하였다.
이 사실이 고려에 알려지자 고려에서는 대규모의 옥사가 일어나 이색을 비롯하여 이에 연루된 사람들이 유배되거나 국문을 당하고 옥사하였으며, 명에서도 이를 무고로 판정함으로써 이초와 함께 율수현(栗水縣)으로 유배되었다.
한편, 사건 당시 파평군(坡平君)을 자칭하였으나, 실제로 봉군(封君)된 적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