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자신(滋新)·내경(來卿). 충청남도 예산 출신. 1891년(고종 28) 무과에 급제한 뒤 선전관을 지냈다. 병서와 경서를 두루 섭렵한 문무겸전의 지장(智將)으로 활약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될 때 동지를 규합하여 지리산으로 들어가 을사의병전쟁을 진두 지휘하였다. 고종은 1908년 7월 7일자로 옥새를 찍어 조칙을 내렸다. 고종은 특사를 시켜 윤자형을 가의대부 의병대장 겸 삼남도육군대도독(嘉義大夫義兵隊長兼三南道陸軍大都督)으로 삼고 남삼도대원수군제사목(南三道大元帥軍制事目) 전12개조를 지어 시행하도록 독려하였다.
12개조의 주요내용은 삼도의 군량대사 작전권을 윤자형의병대장에게 일임한다면서 윤자형은 단을 쌓아 하늘에 고하고 임진·병자 의병의 순국정신을 본받아서 석인을 새겨 쓰고 장관(將官)들을 임면하며(인사권 부여), 장병과 백성을 위무하고 상벌을 엄정, 신속하게 하되 태만자, 비협력자, 백성의 권익을 침범하는 자는 바로 참수하라는 것이다.
아울러 특별한 공이 있는 자는 기록, 포상하라고 명령하였다. 또, 사술(邪術)에 현혹되지 말고 주식(酒食)을 금하라고 명령하였다. 1930년대는 전라남도 광주 무등산에서 동지를 규합, 원각교(圓覺敎)를 개창하였다. 원각교는 민족종교로서의 기능을 하였다. 이후 그는 예산 향리에서 죽었다.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