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경(子敬), 호는 덕포(德浦). 아버지는 장령 윤순거(尹舜擧)이며, 어머니는 함평이씨(咸平李氏)로 관찰사 이춘원(李春元)의 딸이다.
1652년(효종 3)에 생원시에 합격, 그 뒤 10년이 지나 빙고별제(氷庫別提)와 종부직장(宗簿直長)·인의(引儀)·상의주부(尙衣主簿) 등을 지냈다. 1666년(현종 7)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성균전적을 거쳐 병조좌랑·정언·지평·수찬·헌납 등을 지냈다.
1673년 부교리에 승진되었고, 다음 해 능주목사로 부임하였다. 1679년(숙종 5) 사간에 임명되고 다음 해 순창군수에 부임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다스렸다. 1681년 박태손(朴泰遜)과 김수항(金壽恒)의 천거로 예조참의에 발탁되었다.
1689년 대사헌에 임명되었는데 남구만(南九萬)이 어전에서 “윤진은 학문과 인격이 훌륭하니 특별히 정성과 예로써 대우하여야 됩니다.”라고 한 것을 보면, 당시에 윤진의 덕망을 짐작할 수 있다. 1696년 경기관찰사로 임명되었으나 대신들의 진정으로 체대를 허락하여 전직에 유임되었다.
윤진은 관직에 있을 때 붕당을 타파시킬 것, 언로를 열 것, 구황·휼민에 힘쓸 것 등 여러가지 시의적절한 정책건의를 많이 하였다. 용계서원(龍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덕포유고(德浦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