윷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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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까지 즐기며, 4개의 윷가락을 던지고 그 결과에 따라 말[馬]을 사용하여 승부를 겨루는 민속놀이.
이칭
이칭
사희, 척사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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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까지 즐기며, 4개의 윷가락을 던지고 그 결과에 따라 말[馬]을 사용하여 승부를 겨루는 민속놀이.
내용

한자어로는 ‘사희(柶戱)’라고 한다. 2인이 대국(對局)하여 각각 4말을 가지고 29밭이 있는 윷판을 쓰는데, 말 길은 원근(遠近)과 지속(遲速)의 방법으로 승부를 가리는 것이다. 인원수가 많을 때에는 두 패 또는 세 패로 편을 나누어서 논다.

우리 나라 설날놀이의 하나로 정월 초하루에서부터 대보름날까지 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고, 장소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유서 깊고 전통 있는 놀이이다.

이 놀이의 명칭이 윷놀이인 것은 나무막대기 넷을 가지고 노는 놀이이므로, 도·개·걸·윷·모 중 넷을 뜻하는 윷과 놀이가 복합된 것이라 추측된다. 윷의 한자어 사(柶)도 나무막대기 넷을 가지고 논다는 뜻이다.

윷놀이가 어느 때부터 시작되었는지에 대하여 이익(李瀷)은 ≪성호사설≫ 사희조(柶戱條)에서 “윷놀이를 고려의 유속(遺俗)으로 본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북사 北史≫와 ≪태평어람 太平御覽≫ 등의 문헌에 백제에는 저포(摴蒲)·악삭(握槊) 등의 잡희(雜戱)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이 저포는 오늘날의 윷놀이와 유사한 것으로 여겨지므로 윷의 기원은 삼국시대 이전으로 추정된다.

또, 일본 ≪만엽집 萬葉集≫ 주석(註釋)의 권위자인 시카모치(鹿持雅澄)는 ≪만엽집고의 萬葉集古義≫에서 일복삼향(一伏三向)을 ‘고로 (コロ)’, 삼복일향(三伏一向)을 ‘시쿠(シク)’라 방훈(旁訓:두루 해석)하였는데, 가쓰라기(葛城末治)는 이 삼복일향을 ‘시쿠’, 일복삼향을 ‘고로’라 훈(訓)한 데 대하여 의문을 품어 오다가 우리 나라의 윷놀이 중에서 그것을 발견하였다.

삼복일향과 일복삼향이란 도(徒)와 걸(杰)이라는 것을 생각해내고 마침내 그 뜻을 구명하였다. 즉, 우리 한자음으로는 ‘杰’자를 ‘걸’이라고 발음하므로 걸이 와전되어 ‘고로’로 되었다 하며, 그 일례로 현재도 노루[獐]를 일본인은 ‘노로(ノロ)’라 하고 있는 것을 들었다.

이 이두법(吏讀法)은 신라에서 건너간 것으로 생각되거니와 시쿠는 ‘도’, 고로는 ‘걸’이라는 우리말이 변화된 것으로 보인다.

사카이(酒井欣)는 그의 ≪일본유희사 日本遊戱史≫에서 “일본문화는 주로 외래문화를 받아들여 이것을 소화하여 일본화 하였으며, 당시 당나라문화도 삼한(三韓)을 거쳐 들어온 것은 사실이다. 삼한과의 교섭도 역시 빈번히 행하여졌던 관계상 그곳의 문화·문물과 같은 것도 일본에 많이 들어왔고, 유희도 역시 그러하였다.”라고 하여 일복삼향의 유희가 삼국시대에 우리 나라에서 건너간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학설로 미루어볼 때, 윷놀이는 고려시대는 두말할 것 없고, 8세기 일본의 ≪만엽집≫이 찬성(撰成)되기 이전, 즉 신라시대에 이미 있었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윷에는 가락윷(채윷)과 밤윷의 두 종류가 있다. 가락윷은 길이 3치, 너비 4푼 가량의 작은 윷과 길이 5치, 너비 6푼 가량의 중윷(서울윷)이 있고, 이보다 큰 윷은 장작윷 또는 장자윷이라 한다.

가락윷은 박달나무 같은 단단한 나무로 만드는데, 가운데는 굵고 양끝은 조금 가늘게 하고, 등은 둥글게 하여 화조(花鳥) 등을 채화(彩畫)하거나 낙화(烙畫)한다.

배는 약간 평평하게 하되 모서리를 살짝 둥글려서 구르기 좋게 한다. 농가에서는 참나무로 크고 굵게 장작만 한 윷을 만드는데, 손이 작은 사람은 한 손아귀에 쥐기가 어려워서 두 손으로 던질 정도이다. 이것이 장작윷이다. 밤윷은 길이 6푼, 너비 4푼 가량이다. 이 명칭은 다 그 윷의 생김새에서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장작윷 또는 가락윷이라 함은 그 모양이 장작의 축소형처럼, 또는 엿가락처럼 생긴 데에서 붙여진 이름이고, 밤윷은 밤알처럼 작아서 그렇게 부른다. 밤윷은 장작윷에 비하면 아주 작은 것인데, 세로로 쪼개어 4개를 1조(組)로 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주로 경상도 지방에서 많이 사용한다.

사용할 때에는 간장종지 같은 것에 넣어 손바닥으로 덮어 쥐고 흔들어 던지는데, 손가락으로 그 종지 하반부를 쥐고 그 속에 든 밤윷만 땅바닥에 던진다.

또, 이 밖에도 정식 윷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농민들 사이에 콩밭에서나 또는 팥밭에서 작업하다 점심시간이나 잠시 쉬는 사이에 팥이나 콩 두 알을 가지고 그 절반을 쪼개어 흔들어서 땅바닥에 던져 노는 일이 더러 있다.

이러한 윷은 그 사용하는 재료에 따라 그것이 팥이면 팥윷이라 하고 콩이면 콩윷이라 한다. 이밖에 상수리나 도토리, 살구씨, 은행 등의 열매를 이용하기도 한다. 살구씨나 은행은 양면을 두 가지 빛깔로 칠하여 쓴다.

먼저 29개의 동그라미를 그린 윷판[馬田]을 펴놓고 놀이를 하는데, 2, 3명이 보통이지만 인원이 많을 때에는 두 패 또는 세 패로 편을 나누어서 한다.

이 때 서로 윷가락을 던져서 끗수가 많고 적음에 따라 선후 차례를 정한다. 그리고 윷말은 각자 또는 각 편이 네 개씩 가지고 사용한다. 게임은 정해진 선후에 따라 시작한다.

윷가락을 던져서 네 개가 다 엎어진 것은 ‘모’요, 네 개가 다 잦혀진 것은 ‘윷’, 두개가 엎어지고 두개가 잦혀진 것은 ‘개’, 한 개가 엎어지고 세 개가 잦혀진 것은 ‘걸’, 한 개가 잦혀지고 세 개가 엎어진 것은 ‘도’라고 한다.

윷말의 가는 말[行馬]을 보면 도는 한 발, 개는 두 발, 걸은 세 발, 윷은 네 발, 모는 다섯 발을 간다. 이와 같이 다섯이 각각 걸음이 다르다. 말 네 개가 모두 입구(入口)인 도에서 출발하여 참먹이[出口]를 먼저 빠져나가는 편이 이긴다.

윷말 쓰는 법에 대하여 살펴보면, 윷말 한 마리를 ‘한 동’이라 하고, 두 마리면 ‘두 동’, 세 마리면 ‘석 동’, 네 마리면 ‘넉 동’이라고 한다. 그리고 모나 윷이 나오면 한번 더 할 수가 있으며 계속 나오면 계속할 수가 있다.

윷말은 윷가락을 던져서 그 수가 나타나는 데 따라 앞으로 나아간다. 가는 말이 마지막 자리인 참먹이(결승점)를 나오는 데에는 길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 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는 말이 모에 오면 ‘모도’·‘모개’·‘방(中央)’으로 나올 수가 있어, 이 길은 가장 가까운 길이다.

그러나 던진 윷가락이 도·개·걸이 아니고 윷이나 모가 나오면 ‘속윷’이나 ‘속모’로 가야 하므로 이 때는 부득이 ‘찌모’(쨀밭:윷판의 첫 밭으로부터 꺽이지 않고 열다섯째 되는 밭)를 거쳐서 참먹이로 나가야 한다.

또, 가는 말이 걸이나 윷에 있는데, 던진 윷가락이 개나 도가 나오면 모로 가서 앞밭으로 접어들어 빠른 길로 나갈 수가 있지만 그렇지 못하여 걸이나 윷이 나오면 나는 말은 뒷밭까지 치올라가서 ‘뒷도’·‘뒷개’로 가야 한다.

이렇게 하여 올라간 말이 ‘뒷모’에 오게 되면 그 말은 그 안으로 ‘뒷모도’·‘뒷모개’로 내려와서 윷가락의 그 나오는 끗수에 따라 참먹이로 나가게 된다.

그런데 ‘뒷걸’이나 ‘뒷윷’에 있던 말이 던진 윷가락의 끗수가 걸이나 윷이나 모가 나오면 이때는 부득이 ‘찌도’와 ‘찌개’의 가장 먼길로 돌아가야 한다.

윷말을 잡을 때에는 앞서 가는 상대편 말 자리에 이편 쪽 말이 뒤따라가다가 같은 자리에 서게 되면 상대편의 말을 잡게 된다. 그러면 또 한번 윷가락을 던질 수가 있다. 그러므로 상대편의 잡힌 말은 애써 멀리까지 간 것이 헛수고가 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여야 한다.

이와는 반대로 윷가락을 던져서 처음 말이 모자리에 있는데, 다음 차례에 또 모가 나오면 처음 것을 업고서 달린다. 두 마리가 한꺼번에 뛰게 되므로 매우 유리한 입장에 서지만, 뒤따르는 상대편 말이 이것을 잡게 되면 두 말이 한꺼번에 죽게 된다.

그러므로 윷놀이는 윷가락을 잘 던져서 모나 윷이 잘 나오게 하여 연달아 던지는 데에도 승부에 영향이 있지만, 말을 잘 쓰고 못 쓰는 데에도 승패에 많은 영향이 있다.

윷가락의 호칭은 일반적으로 하나를 도, 둘을 개, 셋을 걸, 넷을 윷, 다섯을 모라 부르는데, 이는 끗수를 나타내는 말이다. 도·개·걸·윷·모는 본래가 가축의 이름을 딴 것으로 본다.

즉, 도는 돼지[豚]를, 개는 개[犬]를, 걸은 양(羊)을, 윷은 소[牛]를, 모는 말[馬]을 가리킨 말이다. 도는 원말이 ‘돝’으로서 어간(語幹) 일부의 탈락형이다.

돝은 돼지의 고어로 지금은 일반적으로 돼지라고 하지만 아직도 종돈(種豚)을 ‘씨돝’이라 부르고, 또 일부 노인들 사이에는 돼지고기를 ‘돝고기’라 부른다.

<용비어천가> 제65장에 “苑囿엣 도틀 티샤(斬豕苑囿)” 하였고, ≪두시언해≫에는 “아침 ᄒᆡ엔 ᄃᆞᆰ과 도티 흐텟도다(旭日散鷄豕).”라 함을 보아도 도가 돼지임이 분명하다.

개는 지금도 개[犬]이다. 걸은 일부에서 코끼리(金思燁 說), 또는 신마(神馬, 梁柱東 說)라는 말이 있으나 이는 다 잘못이다. 지금의 양(羊)을 옛날에는 ‘걸’이라 하였다. 자전(字典)에 수놈의 양을 결[0x9560]이라 하는데, ‘0x9560’자를 ‘수양 결’이라 함을 보아 분명하다. 또, 큰 양은 갈(羯)이라 하는데, ‘羯’자를 ‘거세한양 갈’이라 한다.

그러므로 이 걸은 한자인 결(0x9560)·갈(羯)자의 취음(取音)인 것이 분명하다. 윷은 소[牛]이니 방언에 슈·슛·슝·쥬ᇰ·중·쇼·소라고 함을 보아 알 수 있거니와 ≪훈몽자회 訓蒙字會≫에 “저(摴)를 ᅀᅲᆺ뎌, 포(蒲)를 ᅀᅲᆺ표, 탄(攤)을 ᅀᅲᆺ놀탄”이라 하였음을 보아서 ᅀᅲᆺ은 슛으로, 이 슛은 또 윳으로 변하였는데, 최근에는 철자법 때문에 윷으로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ㅿ음(반치음)은 후대로 내려오면서 ㅈ음으로도 변하였으나 대체로 ㅅ음과 ㅇ음으로 변하였음을 본다. 모는 말[馬]이다. 방언에 몰·모·메라 함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모는 몰의 어간 일부 탈락형이다.

≪훈몽자회≫에 “馬를 ᄆᆞᆯ마”라 하였고, <용비어천가> 제109장에는 “ᄆᆞ리 病이 기퍼(我馬孔病)” 하였음을 본다. 이 ‘·’(아래아)음은 후대로 내려오며 ‘오’·‘아’음으로 변하였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지금도 ‘오’로 사용됨을 본다. 팔을 ‘폴’이라 하고, 파리를 ‘포리’라 함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들 가축은 고대인에게 있어서는 큰 재산이었고 또 일상생활에 있어서는 가장 친밀한 짐승이었다. 그러므로 그 가축의 이름과 함께 몸의 크기와 걸음의 속도도 윷놀이에 이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즉, 몸 크기의 차이를 보면 개보다는 양이, 양보다는 소가, 소보다는 말이 더 크며, 또 걸음의 속도도 돼지가 한 발자국의 거리를 뛰는 사이에 말이 한 발자국을 뛰는 거리는 돼지의 다섯 발자국 뛰는 정도의 거리가 되므로, 이렇게 대비하여 끗수를 정한 것으로 보인다.

윷판은 29개의 동그라미로 되어 있다. 윷판의 유래에 대하여 종래 일부에서는 상대(上代) 오가(五加)의 출진도(出陣圖)라 하기도 하고, 부여(夫餘)의 관직제(官職制)를 모의(模擬)한 사출도(四出道)에서 나왔다고도 하였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설은 윷판이 어떻게 보면 그 관직제를 모의한 것 같이도 보이는 데에서 나온 견해일 뿐 그 이상 무슨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의 초점은 윷판의 동그라미가 왜 29개인가에 있다. 이에 대하여 가장 유력한 설은 조선 선조 때의 문인 김문표(金文豹)의 윷판설[柶圖說]이다.

그의 설을 보면, “윷판의 바깥이 둥근 것은 하늘을 본뜬 것이요, 안의 모진 것은 땅을 본뜬 것이니, 즉 하늘이 땅바닥까지 둘러싼 것이다. 별의 가운데에 있는 것은 추성(樞星)이요, 옆에 벌려 있는 것은 28수(宿)를 본뜬 것이다. 북진(北辰)이 그 자리에 있으며 뭇별이 둘러싼 것을 말한다. 해가 가는 것이 북에서 시작하여 동으로 들어가 중앙을 거쳐 다시 북으로 나오는 것은 동지의 해가 짧은 것이요, 북에서 시작하여 동으로 들어가 서쪽까지 갔다가 다시 북으로 나오는 것은 해가 고른(平均) 것이요, 북에서 시작하여 동으로 지나 남으로 들어갔다가 곧바로 북으로 나오는 것은 추분의 밤이 고른 것이다. 북에서 시작하여 동을 지나고 남을 지나고 서를 지나 또다시 북으로 나오는 것은 하지의 해가 긴 것이니, 즉 하나의 물건(윷판)이로되 지극한 이치가 들어 있는 것이로다.”라고 하였다.

윷놀이는 오늘날 단순한 하나의 오락으로서 정초에 하는 놀이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본래의 뜻은 세초(歲初)에 농민들이 윷놀이로 농사의 풍흉을 점치던 고대 농경시대의 유풍의 하나로 보인다.

산촌(山村)에서는 해마다 음력 정월보름날이면 아침 일찍부터 산촌의 젊은이들이 모여 높은지대 편[山便]과 낮은지대 편[平地便]의 두 편으로 나뉘어 윷놀이를 하였다.

그 때 높은지대 편이 이기면 그해의 농사는 높은지대 편이 잘된다고 하였고, 낮은지대 편이 이기면 낮은지대 편의 농사가 잘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놀이가 끝나면 그들은 마을의 넓은 마당으로 나와서 모심기놀음[稻植劇]을 하였다.

이러한 습속으로 보아서 윷놀이의 본의는 농사 점으로 하여오던 것이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 그 본래의 뜻이 차츰 없어지고, 오늘날에 와서는 단순히 오락적인 놀이가 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이 놀이는 한때 놀이와는 달리 아무 때나 하지 않고,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하다가 거의 예외 없이 이 놀이를 그만두었다. 이것을 보더라도 윷놀이는 일반적으로 아무 때나 하는 놀이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농가에서 세초에 행하는 허다한 민속점(民俗占)은 이를 방증(傍證)하고 있다.

만일 이것이 이러한 농사의 점단(占斷 : 점을 쳐서 판단함)에 있지 않고 단순히 유희나 도박이라면 연중 아무 때라도 많이 하여야 될 것인데, 윷놀이는 그렇지 않다.

요컨대, 윷놀이는 상대(上代)에 농민들이 목편(木片)으로 해마다 세초에 그해의 풍흉을 점단하는 데 그 뜻이 있었다고 보며, 그 이유는 이와 같은 농사에 관한 점풍(占風 : 점술과 지술)행위가 대개 세초에 있음에서 입증된다.

참고문헌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중경지(中京誌)』
『잠곡필담(潛谷筆談)』
『주영편(晝永編)』
『성호사설(星湖僿說)』
『한국의 세시풍속』(최상수, 고려서적, 1960)
『日本遊戱史』(酒井欣)
『日本の遊戱』
「한국윷놀이의 연구」(최상수, 『신라가야문화연구』 1, 청구대학 신라가야문화연구소, 1966)
「윷의 유래와 명칭 등에 관한 고찰」(이일영, 『한국학보』 2, 일지사,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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