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 상류 우안(右岸) 일대에는 10여 기씩 한 무리를 이루는 2개의 고분군이 형성되어 있다.
골짜기의 밭 가운데에 있는 고분군은 12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봉토의 가장자리는 모두 큰 돌로 쌓고 윗부분은 잡석·흙을 섞어 쌓은 방대형(方臺形)의 토석혼축묘(土石混築墓)였다.
여기에서 강기슭 쪽으로 1.5㎞ 가량 내려와 남양부락을 중심으로 해 강안을 따라 분포한 고분군은 토축묘와 토석혼축묘가 각각 5기씩 이루어져 있었다. 이 중 3기의 토축묘가 1954년 북한의 과학원 고고학 및 민속학연구소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제1호분의 봉토 크기는 동서 길이 18m, 남북 길이 16m, 높이 2.5m이다. 꼭대기에서 불과 50㎝ 가량 아래에서 돌로 쌓은 덧널의 네 벽이 나타났는데 그 위에 덮였던 뚜껑들은 도굴로 없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이 무덤은 고구려의 일반적 형식과는 달리 먼저 지상에 봉토를 올리고 그 위에 막돌을 쌓아 덧널을 만든 뒤 다시 봉토를 덮어 씌운 특이한 축조방식을 보여주었다.
덧널의 크기는 동서 길이 180㎝, 남북 길이 70∼80㎝, 높이 55㎝이다. 축벽과 밑바닥에는 회를 발랐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덧널 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활촉으로 보이는 철편 1개, 철제 관못 2개, 적갈색 연질토기의 아가리 파편 등이 출토되었다.
제2호분도 이미 도굴된 고분으로서 봉토의 크기는 남북 길이 19m, 동서 길이 21.5m이며 남쪽에서의 높이는 약 3m였다. 봉토 아래 50㎝에서 돌방의 네 벽이 나타났으나 여기에서도 뚜껑돌은 이미 없어진 상태였다.
돌방의 벽면은 한 쪽만 거칠게 다듬은 점판암으로 쌓아올리고 바닥에는 판돌을 깐 후 그 위에 회를 발랐다. 봉토의 기저부에서 돌방의 밑바닥까지의 높이는 130㎝로서 돌방이 전체적으로 봉토의 위쪽으로 치솟은 구조를 보이고 있었다.
돌방의 크기는 남북 길이 300∼302㎝, 동서 길이 178∼180㎝의 장방형이며 남아 있는 벽면의 높이는 100∼120㎝ 가량이었다. 남벽의 거의 중앙에는 높이 110㎝, 너비 57㎝의 널문〔羡門〕이 있었다.
동벽에는 남쪽으로 치우쳐 높이 30㎝, 너비 40㎝, 깊이 35㎝의 네모난 감실(龕室)이 있었다. 돌방 바닥 부근에서 내행화문장의자손경(內行花文長宜子孫鏡)의 청동거울 1점을 비롯한 사람 이빨·골제구슬·칠부스러기와 회백색 계통의 토기편이 출토되었다.
제3호분은 제1호분과 봉토의 크기가 비슷하며, 심한 도굴로 인해 봉토의 꼭대기는 거의 평평하였다. 봉토 내의 돌방구조는 이미 완전 파괴된 상태였다. 봉토 내에서 장식품으로 보이는 인동초 이파리 모양의 금동판 3점이 출토되었다.
이 밖에 파괴되어 돌방 내부가 드러나 있는 토석혼축묘 3기를 더 조사하였다. 돌방은 모두 제1호분과 구조와 크기가 비슷했으나 출토유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