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촉은 본격적인 철기 문화의 유입과 함께 석촉, 청동촉과 함께 제작되다가 원삼국시대~삼국시대를 거치며 무기로 본격적으로 사용된다. 철촉은 촉머리 부분, 목 부분, 슴베로 구성되며, 슴베는 화살대와 연결되는 역할을 한다. 철촉은 촉머리의 평면 형태와 목, 슴베의 유무 등이 시기별 변화와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출토된다.
한반도 남부 지역 내 최초로 확인되는 화살촉은 안성 만정리유적과 완주 신풍유적에서 출토된 철사(鐵鉈) 날 끝부분을 재가공한 것으로, 목과 슴베가 없는 무경식이다. 이후 낙랑을 통해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철경동촉(鐵莖銅鏃)이 제한적으로 출토되긴 하지만, 본격적인 철촉의 사용은 목과 슴베가 없는 무경식인 삼각형 석촉이라고 볼 수 있다.
삼각형 석촉은 한반도 남부 지역 내 서기전 1세기에서 서기 2세기까지 비교적 오랜 기간 동안 유행하는데, 경주 사라리 130호의 시점부터 전체적으로 철촉의 길이가 길어지고 촉머리의 폭이 좁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목이나 슴베를 갖춘 유경식 철촉은 서기 3세기 대부터 등장하여 이후 실용적 기능이 강화된다. 유경식 철촉의 변화는 촉머리의 폭이 좁아지거나〔細長化〕, 목 부분이 길어지고〔長頸化〕, 슴베가 있는〔有莖化〕 것으로 진행된다. 철촉의 변화는 관통력 및 살상력, 비거리를 높이기 위한 실용적 기능이 강화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여겨진다.
삼국시대 이후 목과 슴베가 발달된 장경촉으로 전환되는 경향을 보이지만, 철촉 머리의 평면 형태는 유엽형(柳葉形), 능형, 도자형(刀子形), 사두형(蛇頭形), 역자형(逆刺形), 착형(鑿形), 송곳형 등 다양한 형태를 드러낸다. 이러한 평면 형태에 맞춰 단면 형태도 렌즈형, 편육각혁, 삼각형, 능형 등 다양하게 확인된다.
신라와 가야의 철촉은 4세기 이후 목 부분이 발달하기 시작하며 단경식(短頸式) 철촉이 등장하고, 4세기 후반이 되면 슴베가 발달된 장경식(長莖式) 철촉으로 성행한다. 4세기 후반 장경식 철촉의 출현은 이 시기 나타나기 시작하는 철제 갑주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반면, 고구려 철촉은 한반도 남부 지역의 철촉에 비해 일찍부터 다양한 촉머리를 띠는 유경식 철촉이 유행하는데, 도끼날형, 삼익형(三翼形)의 촉머리 형태는 고구려 철촉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비정된다. 특히 울림통이 부착되어 소리를 내는 신호용 명적으로 사용되는 삼익형 철촉은 대형 고분에서만 출토되는 점은 계층성을 드러낸다. 고구려의 도끼날형 철촉과, 삼익형 철촉은 4세기 후반 이후 신라 지역에서도 출토되어 당시 시대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백제의 철촉은 조사된 사례가 많지 않아 그 특징을 드러내기 어렵지만, 초기에는 목과 슴베가 없는 삼각형 철촉이 확인된다. 이후 여러 형태의 촉머리를 슴베가 있는 유경식(有莖式) 철촉이 사용되며, 4세기 후반 도자형 등의 새로운 형태가 추가되며 목과 슴베가 발달하고 길어지기 시작한다.
4세기 이후 삼국시대 철촉은 실용적 기능이 강화되는 것에 비해 일부 백제 지역에서는 비실용적이지만, 시각적 효과를 도모할 수 있는 의장용 철촉이 부장되기도 한다. 공주 송산리 제1 · 2호분, 나주 덕산리고분에 부장된 철촉 중에 촉머리가 Y자형을 띠거나 촉머리의 폭이 넓은 철촉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철촉은 4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까지 양적, 질적으로 크게 성장하는 반면, 6세기 중엽부터 무덤 내 철촉이 부장되는 현상은 보이지 않는다. 이 같은 현상은 철촉을 비롯한 무기류에 대한 국가적 통제와 관리에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6세기 중엽 이후 철촉은 산성, 보루 등 군사시설과 관련된 유적 내 출토량이 많다는 점은 이러한 추정의 근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