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모는 청동기시대에 중국 동북 지방에 유행하던 세형동모(細形銅矛)에 기원을 두며, 철기의 도입과 함께 제작되기 시작한다. 한반도에서 가장 처음 확인된 철모는 위원 용연동유적에서 출토되었다. 전국시대 화폐인 명도전이 공반되며, 연하도 44호묘의 철모와 비견되어 연나라와의 관계 속에 출현한 것으로 본다.
철모는 양쪽에 날을 세운 신부(身部)와 자루를 끼우는 삽입부인 공부(銎部), 신부와 공부를 연결하는 관부(關部)로 구성된다. 공부의 끝부분인 기부(基部)의 형태에 따라 직선형인 것은 직기형, 둥글게 말아 올려 제비의 꼬리 형상을 띠는 연미형으로 구분한다.
직기형은 청동모에서 연나라와 낙랑의 철모의 영향을 받아 한반도 남부 전역에서 크게 유행한다. 연미형은 고구려에 의해 한나라의 철모를 변용하여 제작한 것으로, 4세기 후엽 고구려의 남진과 함께 한반도 남부 지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한다. 이 같은 두 가지 계통은 신부의 길이와 형태, 관부의 형태에 따라 시 · 공간적으로 다양하게 변화한다.
철모는 신부의 길이를 기준으로 단봉식(短鋒式)과 중봉식(中鋒式), 장봉식(長鋒式) 등으로 나뉜다. 단봉식은 길이 20㎝ 이내로 신부와 공부의 비율이 1 : 1이며, 단면은 능형(菱形) 또는 볼록렌즈형이고, 공부의 단면은 방형이다.
중봉식은 길이가 30㎝ 전후로 신부와 공부의 비율이 3 : 2이며, 신부의 단면이 능형 또는 볼록렌즈형이다. 공부에 있어서 봉부 쪽의 너비가 비교적 넓으므로 전체 너비의 차이가 작다. 장봉식은 길이가 40㎝ 이상으로 신부와 공부의 비율이 1 : 1에 가까우며, 봉부의 단면이 편육각형이다. 공부는 봉부 쪽의 너비가 좁아 전체 너비의 차가 심한 편이다.
삼국시대 이전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는 직기형 철모의 확산이 두드러진다. 신부와 공부의 길이가 거의 같은 단봉식으로, 서기전 1세기 이후 진 · 변한 지역을 중심으로 무덤 내 부장되는 양상이 확인되며, 서기 1세기 대 이단관식 철모의 등장, 서기 2세기 대 관부 돌출형 철모의 등장이라는 지역적 특징을 드러낸다.
진 · 변한 지역에서 보이는 철모의 지역색은 마한 지역에서도 확인되고 있어 지역 간의 교류 관계가 추정되기도 한다. 특히 나주 구기촌유적에서도 3점의 직기형 철모가 확인되었는데, 신부와 공부 단면 형태 등에서 진 · 변한 권역의 직기형 철모와 유사성이 확인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기촌유적의 철모에서는 이단관식이나 관부가 돌출된 형태가 보이지 않는다. 반면 아산 용두리 진터유적, 서천 예산리유적 등에서는 이단관식, 관부 돌출이라는 특징을 띠는 철모가 확인된다.
진 · 변한 지역 철모에서 보이는 관부의 형태를 기준으로 마한과의 교류의 시기를 특정할 수 없으나, 진 · 변한 지역의 특정 시기에 이단관식이나 관부돌출형 철모가 유행하는 등의 현상은 철모의 변화상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속성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4세기 이후 등장하는 연미형 철모는 직기형 철모와 함께 삼국시대 각국 철모의 주류가 된다. 연미형 철모의 보급으로 실용 무기로서의 철모는 신부와 관부의 경계가 없어져 전체적으로 뾰족하고 예리한 첨봉 철모로 변화한다. 이와 함께 삼국에서 투겁에 반이 부착된 반부 철모와 투겁이 다각형을 이루는 다각형 철모도 확인된다.
4세기 후반 백제의 지방 지배자 무덤에서 간혹 출토되는 반부 철모는 지방 지배자 또는 군사 지휘관의 의장용 철모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5세기 후반이 되면 가야에서는 백제 철모의 영향을 받아 투겁의 끝부분을 은판으로 감은 은장 철모가 대가야 권역을 중심으로 최고 지배자의 무덤에서 출토된다. 철모 형식의 위계화는 가야에서 군사적 계층 관계를 기반으로 한 군사 조직이 형성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6세기에 이르면 다른 무기류들과 함께 철모도 무덤에 더 이상 부장되지 않는다. 이는 철모를 비롯한 모든 철제 무기들이 일원적 관리와 통제하에 실전에 동원되었음을 보여 준다. 이를 통해 한층 더 강화된 군사 조직이 운영되고, 철모도 그에 따라 혁신, 계량되어 실전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