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검(銅劍)·동과(銅戈)와 함께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이다. 동검과 같은 청동제 무기이면서도 출현시기는 상당히 늦어 세형동검(細形銅劍) Ⅰ식과 반출(伴出)된 경우는 두 세 가지 예에 불과하고 대부분 Ⅱ식의 검과 공반되고 있다.
우리나라 동모의 기본적인 특징으로는 원통형의 자루투겁[銎部]을 가진 점과 이 자루투겁이 그대로 연장되어 몸체 중앙에 등대를 이루고 융기한 점을 들 수 있다. 이 등대는 주조 후에 날을 세우기 위해 숫돌에 갈기 때문에 등날이 생겨, 동모 앞부분의 형태가 동검과 아주 비슷하다.
동모의 분포는 동검의 분포와 비슷해 평안북도·함경북도지방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국적이지만 동검의 분포보다는 조밀하지 않다. 주로 평양을 중심으로 한 평안남도지방과 경주를 중심으로 한 경상북도지방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다.
동모는 착병법(着柄法)과 형태를 기준으로 하여 몇 가지 형식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대체로 자루투겁에 둥근고리[環耳]가 없고 대신 자루를 고정하기 위한 작은 구멍이 있으며, 융기가 뚜렷하지 않은 1개의 돌기대(突起帶)가 있는 것이 고식이다.
한편, 자루투겁에 고리가 있고 날부분에 피홈[血溝]의 수가 많으며 문양이 있는 것, 또 몸체의 길이가 길어진 것 등이 발전된 형식으로 볼 수 있다.
이 후기의 동모는 일본으로 흘러들어가 야요이시대(彌生時代)에 대형화된 방제품(倣製品)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것이 다시 우리나라의 남부지방에 역수입되어 고성패총 같은 유적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동모류는 중국 요령(遼寧)지방의 요령식 동검묘에서는 출토되지 않아 동검과는 달리 그 조형(祖形)을 찾기가 어렵다.
중국 전국시대 동모와 비교해볼 때 허베이성(河北省) 연국(燕國)영역의 영향, 또는 기본형태가 같은 허난(河南) 동모에서 영향의 영향 등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다만 우리나라 동모들은 주조 후 등대를 갈아서 등날을 세운 것이 중원형식과는 구분되는 지역적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중국 남산리(南山裡) 곽가둔(郭家屯) 유적과 충청남도 부여지방에서는 요령식 동검과 같은 형태의 동모가 발견되었고, 함경남도 영흥읍 유적에서도 요령식 동모의 거푸집[鎔笵]이 출토되어 확실한 조형 규명에는 자료의 증가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돌로 만든 거푸집은 전라남도 영암, 평안남도 평양, 경기도 고양 원당 등에서 발견되었다.
동모는 주로 동과·유견동부(有肩銅斧)·Ⅱ식의 세형동검과 공반되며 철기도 함께 발견된다. 유적으로는 널무덤[土壙墓] 계통의 것이 대부분이다.
연대로는 Ⅰ식 세형동검시기 말인 서기전 2세기경에 출현하여 1세기 말까지는 계속되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 뒤에는 완전히 철기로 대치되었다고 믿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