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 서북안의 작은 구릉지대에 있으며, 주위에도 약 15, 16기의 고분이 분포되어 있다. 강동한왕묘로 불리게 된 유래는 확실하지 않으며, ‘황제묘’라고도 불린다.
방형(方形)의 2층 기단 위에 봉토하여 원분(圓墳)을 만들었으며, 널방[玄室]이 남쪽으로 면하게 되어 있다. 봉토의 지름이 약 54m, 높이 10.8m로 평양 부근 고분 중 최대 규모이다. 봉토의 표면에서 약 30㎝ 깊이에 각종 기와조각을 깔아 빗물이 스며들지 않게 하였다.
널방은 평면이 방형이며 네 벽은 큰 판석(板石)을 이용해서 축조하였다. 천장은 네 벽선과 평행하게 2단의 역(逆)계단형 받침돌을 내밀어 천장면적을 줄인 다음 네 귀에 삼각형의 받침돌을 걸친 뒤 그 위에 1매의 판석을 덮어 만든 모줄임식[抹角藻井]으로 처리하였다.
널방의 남쪽으로는 앞방[前室]이 없이 바로 긴 널길[羨道]과 연결되어 평면 T자형인 외방무덤[單室]형식을 이루고 있다. 널길은 안쪽·중간·바깥쪽의 3개소에 돌문[石扉]과 돌을 세워 막았다. 널길의 벽천장에는 칠이 두껍게 발라져 있다.
널방 내부에는 좌우로 두 개의 돌상[石床]을 나란히 놓았고, 그 위에 나무널을 올려놓았는데 붕괴되어 있었다. 널의 내부에는 주칠(朱漆), 외부에는 흑칠(黑漆)을 발랐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고분은 이미 도굴당해 부장품이 남아 있지 않았지만 봉토 중에서 발견된 도제(陶製)의 광구호(廣口壺) 1점과 수막새기와·암키와·수키와조각 몇 점이 출토되었다.
강동군의 읍지인『오주지(吳州志)』에는 이 고분이 고구려동천왕의 능으로 되어 있으나, 정제된 묘실의 결구(結構)상태나 기와조각 등으로 보아 5, 6세기경의 고구려 중기 묘제로 믿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