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 한왕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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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남도 강동 한왕묘 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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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문화
유적
북한 평안남도 평성시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제11대인 동천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능.
이칭
이칭
황제묘(皇帝墓)
목차
정의
북한 평안남도 평성시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제11대인 동천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능.
내용

대동강 서북안의 작은 구릉지대에 있으며, 주위에도 약 15, 16기의 고분이 분포되어 있다. 강동한왕묘로 불리게 된 유래는 확실하지 않으며, ‘황제묘’라고도 불린다.

방형(方形)의 2층 기단 위에 봉토하여 원분(圓墳)을 만들었으며, 널방[玄室]이 남쪽으로 면하게 되어 있다. 봉토의 지름이 약 54m, 높이 10.8m로 평양 부근 고분 중 최대 규모이다. 봉토의 표면에서 약 30㎝ 깊이에 각종 기와조각을 깔아 빗물이 스며들지 않게 하였다.

널방은 평면이 방형이며 네 벽은 큰 판석(板石)을 이용해서 축조하였다. 천장은 네 벽선과 평행하게 2단의 역(逆)계단형 받침돌을 내밀어 천장면적을 줄인 다음 네 귀에 삼각형의 받침돌을 걸친 뒤 그 위에 1매의 판석을 덮어 만든 모줄임식[抹角藻井]으로 처리하였다.

널방의 남쪽으로는 앞방[前室]이 없이 바로 긴 널길[羨道]과 연결되어 평면 T자형인 외방무덤[單室]형식을 이루고 있다. 널길은 안쪽·중간·바깥쪽의 3개소에 돌문[石扉]과 돌을 세워 막았다. 널길의 벽천장에는 칠이 두껍게 발라져 있다.

널방 내부에는 좌우로 두 개의 돌상[石床]을 나란히 놓았고, 그 위에 나무널을 올려놓았는데 붕괴되어 있었다. 널의 내부에는 주칠(朱漆), 외부에는 흑칠(黑漆)을 발랐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고분은 이미 도굴당해 부장품이 남아 있지 않았지만 봉토 중에서 발견된 도제(陶製)의 광구호(廣口壺) 1점과 수막새기와·암키와·수키와조각 몇 점이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강동군의 읍지인『오주지(吳州志)』에는 이 고분이 고구려동천왕의 능으로 되어 있으나, 정제된 묘실의 결구(結構)상태나 기와조각 등으로 보아 5, 6세기경의 고구려 중기 묘제로 믿어진다.

참고문헌

『朝鮮の建築と藝術』(關野貞, 岩波書店, 1941)
『朝鮮古蹟圖譜』2(朝鮮總督府, 1915)
『朝鮮古蹟圖譜解說』2(朝鮮總督府, 1915)
집필자
이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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