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도(匽刀)’·‘이도(易刀)’ 등으로도 불린다. 손칼〔刀子〕으로부터 나오게 된 손칼모양 동제 화폐의 일종으로, 표면에 ‘명(明)’자 비슷한 것이 주출되어 있어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전국시대 초엽에 도전(刀錢)의 하나인 첨수도(尖首刀: 도전의 칼날 끝부분이 뾰족한 것)에서 전화된 것으로 대부분이 연(燕)에서 쓰였고 일부는 제(齊)와 조(趙)에서 쓰였다. 우리나라에서는 퇴장유적(退藏遺蹟)에서 주로 출토되며 일부 주거지와 고분에서 출토되기도 한다.
크기는 일반적으로 길이 12.4∼13.5㎝, 너비 1.5∼1.9㎝이고, 무게는 12∼19g이다. 손잡이끝에는 고리〔環〕를 가지고 있고, 손잡이에는 3조의 직선문양이 길이로 나 있다. 재료는 모두 청동이며, 거푸집〔鎔范〕에 의해 주조된다. 통상 발견되는 도전의 90% 정도로 그 수가 많으며, 수백·수천 매의 묶음으로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명도전은 형식과 ‘명(明)’자의 형태에 의해 3종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종류는 칼등 쪽이 부드럽게 만곡되고, 명자가 ‘{{#039}}’으로 표시되어 있다. 뒷면의 문자는 초기 것이 숫자·간지(干支) 등으로, 후기 것이 ‘좌(左)’·‘우(右)’·‘{{#040}}’ 등으로 되어 있다.
두 번째 종류는 첫 번째와 형식은 매우 닮았으나 크기에서 차이가 나고 ‘明’자의 형태가 ‘{{#041}}’으로 되어 있다. 뒷면에는 ‘제화(齊化)’, ‘제화이십(齊化二十)’, ‘제화공금(齊化共金)’, ‘점백□(簟佰□)’, ‘안양백□(安陽佰□)’ 등 제나라와 관련된 지명과 ‘성백(成白)’ 등 조나라 지명을 쓴 것, 부호 같은 글자를 하나 쓴 것 등이 보인다. 이 종류는 발견 예가 극히 적다.
세 번째 종류는 칼등쪽으로 칼몸과 손잡이의 접속점이 ‘〈’형으로 꺾여 있으며, ‘명(明)’자는 ‘{{#038}}’형태로 표시되어 있다. 질이 위의 두 종류에 비해서 아주 나쁘다. 뒷면의 글자는 첫 번째 종류와 거의 비슷하다. 수량은 이 종류가 가장 많다.
명도전은 첨수도와 마찬가지로 연나라에서 통용되던 화폐로 연나라에서 직접 주조, 발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연대는 대체로 첫 번째 종류가 전국시대 초기, 두 번째 종류는 연나라가 제나라를 점령했을 때, 세 번째 종류는 전국시대 후기에 발행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명도전이 출토된 유적은 대체로 청천강을 중심으로 이북에 몰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분포를 연의 동방진출과 연관해서 해석하려는 견해도 있다. 즉, 명도전이 서기전 3세기 무렵으로 편년될 경우, 연의 영향권내에서 이 지역에 거주하던 주민에 의해, 서기전 2세기 무렵이면 진한(秦漢)교체기나 위만조선 단계에 거주하던 주민에 의해 매납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주요 유적으로는 평안북도 위원군 용연동 및 영변군 세죽리 등의 퇴장유적과 시중군 노남리의 초기철기시대 주거지유적, 평양시 정백동의 3호 목곽분유적 등을 들 수 있다. 정백동 3호분에서는 명도전이 오수전(五銖錢)과 함께 출토되어 주목된다.
명도전은 전국시대 말기 중국 북변의 문화가 한반도로 파급된 것을 나타내는 자료로서 유적의 연대 추정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아울러 고조선과 연 사이의 활발했던 문화교류를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