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구토기(注口土器)’라고도 한다. 부리란 액체를 따를 수 있도록 그릇 몸통의 한 곳에 구멍을 뚫고 단 대롱모양의 주둥이를 말하며, 주로 신라·가야토기에서 나타난다. 백제시대의 부리토기는 많지 않으며, 근래 충청북도 청주시 가경동 4지구 유적에서 출토된 바 있다.
신라·가야시대의 부리토기는 중기인 5세기를 전후하여 나타나며 주로 가야시대에 집중되는데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짧은 목이 달린 작은 단지〔小壺〕로 부산 복천동고분군, 창녕 계남리 제1호분, 칠곡 구암동 제56호분 등의 가야고분에서 출토되었고, 둘째는 굽달린 작은 단지〔有臺注口小壺〕로 경주 계림로 제45호분, 칠곡 구암동 56호분, 식리총(飾履塚), 금령총(金鈴塚) 등지에서 보이는데, 금령총의 것은 달개장식〔瓔珞〕이 되어 있다. 셋째는 굽달린 사발〔有臺注口碗〕로 창녕 계남리 제1호분에서 출토되었다. 이들 부리토기는 대부분 10㎝ 안팎의 작은 토기들로, 좁고 긴 대롱모양의 부리를 따로 만들어 기벽에 접합시켰다.
이러한 전형적인 부리토기 이외에 말탄사람토기·서수형토기(瑞獸形土器) 등에도 몸통 앞쪽에 부리가 달려 있어 넓은 의미에서 부리토기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신라 후기와 통일신라시대에 들어서면 주전자모양의 토기가 나타나고 전형적인 부리토기는 사라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