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리고분군은 모두 10여 기로서 1917년에는 제4호분, 1918년에는 제1호분, 1939년에는 제2·3·5호분이 조선총독부 고적조사위원회에 의해 각각 조사되었다. 나주덕산리고분군은 1963년 1월 21일에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나 인접한 고분군들과 통합되어 2011년 7월 28일 사적 나주 반남고분군으로 재지정되었다.
제1호분은 매장시설의 유형과 특징 등은 알 수 없지만 덕산리 제2호분과 제3호분으로 미루어보아 독무덤〔甕棺墓〕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제1호분의 정확한 봉토 규모는 1.65m, 직경 9∼10m의 원형분이다.
제2호분 역시 독무덤으로서 장방형에 가까운 모양으로 남아 있는데 가로 28.7m, 세로 12.64∼16.82m, 높이 3.56m로 1939년 조사 당시 동쪽은 원형, 서쪽은 방형을 이루고 있다.
제3호분은 1939년 발굴 당시 직경 23∼24m, 높이 9m 남짓한 큰 원분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의 규모는 직경이 43.81∼45.55m에 이르고 있어 당시와는 매우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모두 3개의 독이 수습되었다.
먼저 갑관(甲棺)은 몸통을 옆으로 설치하고 이것에 뚜껑독〔蓋甕〕을 끼운 다음 틈을 회로 메운 것인데 둘레에는 4점의 토기가 부장되어 있었다. 을관(乙棺)은 상체부가 모두 파괴되어 없어졌기 때문에 밑부분만이 남아 있고 둥근바닥항아리〔圓底壺〕1점을 수습하였다. 병관(丙棺) 역시 상부의 대부분이 결실되어 바닥만을 남기고 있다. 그런데 남아 있는 봉토 속에서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유물 중에는 쇠화살촉〔鐵鏃〕, 쇠손칼 등의 철제 이기(利器)와 쇠못〔鐵釘〕, 꺾쇠 등 관재(棺材)용구, 은제옥(銀製玉)과 같은 장신구 외에 금동장식금구편(金銅裝飾金具片) 등이 있었다.
제4호분 역시 독무덤인데, 독은 영산강유역 특유의 대형 독을 전용으로 하며 이음식〔合口式〕이다. 밑부분에서 2∼3개의 토기가 발견된 바 있다.
제5호분은 발굴조사 당시 직경이 23m, 높이 8m였으나 현재는 동서 직경 44.85m, 높이 7.1∼7.45m의 대형 원분이다. 봉토의 북쪽 기슭 언저리에는 계단 모양의 단을 두고 있다. 이 고분 역시 독무덤이지만 도굴로 인해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도굴 당시 큰칼〔大刀〕, 금제품, 옥류 등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덕산리고분군은 삼국시대의 독무덤으로서 동일한 봉토 안에 여러 개의 독을 합장하고 있으며, 독은 2∼3개의 큰 항아리를 맞붙여 널〔棺〕을 만들었는데 그 널은 주로 남북방향으로 매장되어 있다.
그런데 제2호분은 그 봉토의 외형이 동단은 원형이고 서단은 방형이어서 일본 고분에서 볼 수 있는 전방후원식(前方後圓式)이며, 제3호분은 봉토 주위에 도랑〔湟〕이 있어 일본 고분과의 유사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들 독무덤은 일본 고분의 조형(祖型)으로 생각해볼 수 있으며, 그 계통은 광주 신창동유적에서 볼 수 있듯이 선사시대 묘제에서 계승하여 발전되었다고 본다. 이 고분군은 5세기말경 백제시대 마한세력의 무덤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