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지마왕릉은 1971년 4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9,488㎡이다. 지마이사금은 제5대 왕인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의 아들로서 성이 박씨(朴氏)다. 어머니는 사성부인(史省夫人)이며 왕후는 김씨(金氏) 애례부인(愛禮夫人)으로 갈문왕(葛文王)마제(摩帝)의 딸인데 아들은 없었다. 지마이사금은 대략 23년의 재위기간 동안 가야·왜·백제와 군사적인 대치를 벌이는가 하면 외교관계를 맺기도 하였다.
왕릉은 경사진 지형을 이용하여 일단 높은 곳에 만들고, 외부 모습은 흙으로 덮은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이다. 무덤의 지름은 12m, 높이는 3.4m이다. 겉으로는 아무런 표식물이 없는 단순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왕릉 앞에 놓여 있는 잘 다듬은 돌은 1955년에 설치한 것으로 영혼이 나와 놀게 하기 위하여 설치한다는 혼유석(魂遊石)이다.
이 왕릉은 남산 서북쪽에 분포하는 무덤 가운데 가장 특징이 없고,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이 왕릉은 경주 평지에 있는 고분과 입지조건이 달라 2세기경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지마왕릉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즉 이 왕릉이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단독분인데가 봉분의 규모가 작은 것으로 보아 신라 말기인 9세기대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이었을 것으로 파악하는 견해도 제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