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헌덕왕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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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경주 신라 헌덕왕릉 전경
경주 신라 헌덕왕릉 전경
고대사
유적
문화재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제41대 헌덕왕의 능. 왕릉. 사적.
이칭
이칭
헌덕왕릉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사적(1963년 01월 21일 지정)
소재지
경북 경주시 동천동 80번지
정의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제41대 헌덕왕의 능. 왕릉. 사적.
개설

헌덕왕릉은 1963년 1월 21일에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1만 8,007㎡이다. 무덤의 지름은 26m, 높이는 6m이다. 헌덕왕의 성은 김씨, 이름은 언승(彦昇), 왕비는 귀승부인(貴勝夫人)이다. 조카인 애장왕을 죽이고 809년에 왕이 되어 826년까지 18년간 왕으로 재위하면서 농사를 장려하고 친당정책(親唐政策)을 폈다. 김헌창(金憲昌)·김범문(金梵文)의 반란을 진압하는 등 당시의 국내정세는 혼란스러웠다. 승하한 뒤 시호를 헌덕이라 하고 천림사(泉林寺) 북쪽에 장사지냈는데 지금의 위치로 비정되고 있다.

내용

무덤의 외형은 흙으로 덮은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이고 매장주체부는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이다. 무덤 밑둘레를 따라 잘 다듬은 판석(板石)을 사용해 병풍처럼 돌려 무덤의 보호석을 마련하였다. 판석과 판석 사이에는 두 판석을 맞물리게 하는 탱석(撐石)을 끼워 판석을 고정시켰으며 아울러 탱석에는 같은 간격으로 방향에 따라 12지신상(十二支神像)을 조각하였다. 이들 판석과 탱석 위로 갑석(甲石)을 올려 보호석을 마무리하였다.

12지는 12지생초(十二支生肖)라고도 하는데 중국에서 방위와 시간개념으로 출발한 것으로 불교의 영향으로 12동물로 대응한 것은 후대의 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이 무덤에 있는 것은 방위신(方位神)으로 무덤을 수호한다는 의미에서 만들었다. 신라의 왕릉에는 성덕왕릉·괘릉(掛陵) 등 몇몇 예가 있다. 김유신묘에도 무덤 주위에 12지신상이 조각되어 있다.

이 능에는 12지 중 돼지〔亥〕·쥐〔子〕·소〔丑〕·호랑이〔寅〕·토끼〔卯〕등 5개 상만 남아 있고 그밖에는 없어졌다. 나머지는 무덤 전방으로 흐르는 경주의 북천(北川)이 1742년(조선 영조 18) 8월 22일에 범람해서 무덤의 일부가 유실되었다. 당시 좌의정 송인명이 영조에게 그 사실을 아뢰었으며 그로 인해 경상도관찰사가 수축하였다.

원래는 신라 제42대 흥덕왕릉과 마찬가지로 무덤의 전면에 문인석(文人石)과 무인석(武人石)을 갖추고 무덤의 둘레를 따라 돌난간을 마련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현재 경주고등학교 정원에 놓여 있는 호인상 1구의 머리 부분이 원래 원성왕릉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헌덕왕릉에는 원성왕릉과 마찬가지로 무덤 전면에 호인상(胡人像)과 같은 석물들이 배치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왕릉의 호석 구조는 앞 시기의 왕릉을 충실히 계승하였으나 면석과 탱석은 각각 48개로 구성되었으며 탱석에도 고유한 방향에 맞게 12지신상을 부조하였다. 따라서 이웃하는 12지신상 사이에 들어가는 면석과 탱석의 수는 이전 시기 왕릉보다 각각 1개씩 총 24개가 더 들어간 것이다. 그만큼 봉분의 지름이 커진 까닭에 헌덕왕릉은 12지신상이 부조된 신라왕릉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남쪽·서쪽 호석과 석난간의 대부분은 1970년대 경주고도 관광종합개발계획에 의해 정비, 보수함으로써 새롭게 마련된 것이다. 왕릉의 남동쪽에 놓인 상석(床石)은 흥덕왕릉의 상석을 모방한 탁자식 형태로 2007년에 설치된 것이다.

왕릉의 피장자에 대해서는 헌덕왕 외에도 조선시대에는 김유신으로 잘못 기록한 문헌도 남아 있으며 최근에는 진평왕으로 추정한 견해도 있어 향후 새로운 연구 대상이 될 전망이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한국고고학전문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04)
『신라 후기 고분문화 연구』(홍보식, 춘추각, 2003)
『신라고분연구』(최병현, 일지사, 1992)
『고도경주』(경주시, 1982)
『문화재대관-사적편-』(문화재관리국, 1975)
「통일신라시대 왕릉 앞 석인 연구」(이재중,『석오윤용진교수 정년퇴임기념논총』, 논총간행위원회, 1996)
「신라왕릉의 재검토」(강인구,『삼국유사의 종합적 검토』,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7)
「경주지역문화유적보존개발계획」(경상북도·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1986)
「신라 십이지신상의 분석과 해석」(강우방,『불교미술』1, 1973)
집필자
김선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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