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은 그림과 글씨 등을 나무틀로 짠 판에 붙여 세울 수 있게 만든 장황 형태이다. 자수로 되어 있는 것도 있다. 병풍은 공간을 분할하고, 찬바람을 막아 주며, 벽면을 장식하는 등 가구와 같은 역할을 한 기물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녔다. 판의 수에 따라, 하나의 판으로 구성된 것을 통병풍, 2개의 판을 연결하여 만든 것을 가리개 또는 경병풍이라 하고, 2개 이상의 판을 종이띠로 연결하여 만든 것을 연결 병풍이라 하는데 8폭 병풍이 가장 일반적이다. 한국의 병풍은 아랫부분에 짧은 다리를 두어 온돌방의 온도가 높아져도 기본 틀이 뒤틀리지 않도록 배려했다.
병풍은 그림이나 글씨, 자수 등을 배접하여 나무틀에 밑종이를 여러 겹 붙여 만든 판에 다시 붙이고 판들을 연결하여 세울 수 있게 만든 장황 형태이다. 판의 수에 따라 하나의 판으로 구성된 것을 통병풍, 2개의 판을 연결하여 만든 것을 가리개 또는 경병풍(硬屛風)이라고 하고, 2개 이상의 판을 종이띠로 연결하여 만든 것을 연결 병풍, 연병풍(連屛風)이라고 한다.
병풍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장황 형식 중 하나이다. 병풍의 초기 형태는 중국 주나라의 천자가 높이 8척의 판에 자루가 없는 여러 개의 도끼를 도안식으로 그리거나 수놓아 뒷벽을 장식하였다는 부의(斧扆)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병풍의 초기 형태를 보여 주는 유물로 중국 후난성[湖南省] 창사[長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마왕퇴 1호분 출토 「칠병풍(漆屛風)」이 있다. 이 작품은 하나의 넓은 판 위에 천마(天馬)를 그려 놓은 것으로, 부의와 같은 통병풍 형태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통병풍 형태의 병풍이 조선시대에 사용되었으며, 『국조오례의』 「도식(圖式)」에서 그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또 1901년 『영정모사도감의궤(影幀模寫都監儀軌)』의 「도설」에 묘사된 ‘오봉병(五峯屛)’ 중 통병풍 형태로 만들어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이 남아 있다.
병풍(屛風)의 ‘병(屛)’자는 ‘시(尸)’와 두 손을 나타내는 ‘병(幷)’이 결합된 문자이며 ‘시’자는 시신을 뜻하는데 고대에는 우상의 뜻으로도 해석되었다. 그 뜻은 ‘은폐하다’ ‘앞을 가리다’ ‘울타리 치다’ ‘겁내게 하다’ ‘물리치다’로 해석할 수 있다. 『논어』에서도 ‘시’자를 예배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병(屛)’자는 제사상이 병풍 앞에 차려지고 그 앞에 사람들이 도열해 있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병풍의 형식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한대(漢代)의 부의 형식에서 유래된 통병풍과 2폭 이상이 연결되는 연병풍 형식이다. 제작 방식은 기본적으로 나무로 골조를 만들고 그 위에 종이를 발라 서화를 붙일 틀을 만든다. 연병풍의 경우 이러한 틀을 2~12개까지 연결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병풍의 연결 방식은 종이나 천을 각 폭의 가장자리에 엇갈리게 붙여 연결하는 방법으로 ‘돌쩌귀식’ 또는 ‘종이날개식’이라고 한다. 일본의 야마모토 겐[山本元]은 1924년 저술한 『표구 입문(表具の栞)』에서 이러한 방법은 한국에서 자체적으로 발생된 것이라고 서술한 바 있다. 현재에는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이러한 방법으로 병풍이 제작되고 있다. 틀을 연결한 후에는 앞면에 작품과 장식 비단을 붙이고 뒷면은 두꺼운 종이나 천, 필요에 따라 표제(表題)를 붙여 마무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 병풍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구조적 특징은 병풍의 밑부분에 만든 짧은 다리이다. 다리를 만드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특징적인 가옥 구조, 즉 온돌이라는 방의 구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병풍은 공간을 분할하고, 찬바람을 막아주며, 벽면을 장식하는 등 가구와 같은 역할을 하는데, 방의 온도가 높아져도 나무로 만든 병풍의 기본 틀이 뒤틀리지 않도록 바닥에서 약간 공간을 띄울 수 있는 다리를 고안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일반 목가구에서 볼 수 있는 다리의 역할과 같다. 또 다른 이유로 병풍이 야외에서도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오염을 막기 위하여 다리를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현전하는 병풍의 형식 중 가장 고식(古式)을 보여 주는 예로 16세기에 제작된 「소상팔경도팔곡병(瀟湘八景圖八曲屛)」이 있다. 이것은 조선 중기에 유행하던 소상팔경을 주제로 8폭 형식으로 제작된 병풍으로, 16세기 산수화 병풍의 장황 형태를 보여 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현재 일본 다이간지[大願寺]에 소장되어 있으며, 다이간지의 승려였던 손카이[尊海]가 조선에 왔다가 1539년 일본으로 돌아갈 때 가지고 간 작품이다. 병풍 뒷면에 손카이가 써 놓은기록을 통해 병풍의 제작 시기와 전래 내력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병풍의 높이는 1m 정도로, 작품의 사방으로 붉은색 · 흰색 · 쪽색의 얇은 띠를 둘러 장식하였으며, 각 폭마다 2개씩 모두 16개의 짧은 다리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작품의 주변을 2㎝ 정도의 띠로 둘러 주었다. 작품을 감싸는 듯한 띠는 보통 감색 또는 쪽색 비단이나 종이로 꾸며 주는데 이러한 쪽색은 병풍은 물론, 족자 등의 장황 재료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색상이다. 감색은 쪽을 발효시켜 얻는 색인데, 쪽은 색이 쉽게 변하지 않으며, 충해도 예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