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자상 4구, 석인상 4구, 팔각석주 2기 등 모두 10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덤 입구에 화표석을 두고 무인상과 무관상으로 추정되는 석인상과 석수상(石獸像) 등의 능묘 조각상이 배치된다. 우리나라 능묘조각은 백제 무녕왕릉 석수상(국보, 1974년 지정)에서 처음 등장하며 신라시대는 김유신묘의 호석에 새긴 십이지신상이 가장 이른 예이다. 이후 중국 당나라의 영향을 받아 통일신라시대의 정형화된 능묘제도가 형성되었다. 괘릉 석상들은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능묘조각군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괘릉의 능묘조각은 봉분이 바라 보이는 능묘 입구에서부터 화표석인 팔각석주가 놓이고, 그 위로 문인상과 무인상이 각각 한 쌍씩 사자상이 2구씩 마주하는 구조이다. 관모를 쓴 문인상은 당당하면서도 위엄이 느껴진다. 칼을 움켜 쥐고 주먹을 쥔 무인상은 큼직한 이목구비, 힘이 느껴지는 굵은 옷주름, 근육이나 장식에서 사실성이 돋보이는데 곱슬머리와 부릅뜬 눈, 턱수염 등에서 신라인 보다는 이국인의 모습을 표현하였다. 이를 두고 중앙아시아인이 아니라 불교의 금강역사상과 관련있을 것이라 보기도 한다. 각기 다른 모습의 사자상 네 구도 탄력적인 가슴과 곱슬곱슬한 머리 갈기, 날카로운 발톱 등 당당한 자세에 사실적인 세부 표현이 특징이다.
8세기에 제작된 경주 괘릉 석상 및 석주는 정교하고 사실적인 세부 묘사가 특징인 대표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왕릉 조각들이다. 특히 중앙아시아인 혹은 불교의 금강역사상과 같은 풍모를 한 석인상은 통일신라 왕릉조각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며, 당당하면서도 자유분방한 사자상도 동물조각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통일신라시대 조각사와 능묘문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