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강화 고려산에 위치한 청련사 큰법당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으로, 사찰 창건부터 청련사의 주존불상으로 모셔져 왔다고 전한다. 청련사는 기록상으로 1821년에 비구니 포겸(包謙)에 의해 중창된 비구니 사찰이지만 창건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이 불상은 발원문 등 조성과 관련된 자료가 없어 정확한 조성 연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신체에 비해 큰 얼굴, 근엄한 인상, 중품하생의 수인(手印), 잘게 주름 잡힌 옷 주름 그리고 앞으로 숙인 자세 등의 특징에서 고려 후기의 불상으로 추정된다.
오른손은 가슴 위로 들고 왼손은 배 부분에 놓은 상태에서 각기 엄지와 중지를 맞댄 중품하생인을 취하였으며 결가부좌로 앉아 있다. 얼굴은 몸에 비해 큰 편이며, 턱선이 둥근 살찐 얼굴 형상에 눈꼬리가 올라간 긴 눈, 이마와 연결되는 넓은 콧등과 높은 콧날, 다부진 입 등 단정하고 근엄한 인상을 풍긴다. 육계는 머리와의 경계가 불분명하고 둥글며 나발은 촘촘히 표현되었다.
착의법은 편삼 위에 대의를 입은 변형통견식으로 오른쪽 어깨 위에 반달형으로 걸쳤고 다시 옆구리 사이에 대의를 넣어 옷주름이 사선으로 표현되었다. 왼쪽 어깨에는 지그재그식으로 곡선을 그리며 흘러내리는 옷 주름 아래로 잔주름이 잡혔으며 그 밑의 맞주름은 입체감 있게 표현되었다. 드러 낸 가슴에는 수평으로 가로 지른 승각기에 띠 매듭을 묶어 고정하였다. 무릎 밑으로 흘러 내린 옷자락은 그 끝이 왼쪽 무릎 위에 나뭇잎 형상으로 접혀져 있으며, 양 무릎 밑으로 수평의 주름을 이루며 흘러내린다.
청련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단정한 신체비례에 몸에 비해 큰 얼굴, 단아하고 근엄한 인상, 올라간 눈꼬리, 이마와 연결되는 콧등, 변형통견식의 옷차림에 조밀한 옷 주름 표현 등에서 1280년에 중수된 서산 개심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비교된다. 또한 왼쪽 어깨에 표현된 대의의 잔주름이라든가 고개를 약간 숙인 자세, 다소 큰 얼굴 등은 1274년으로 추정되는 서울 개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보물, 2010년 지정), 서울 수국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보물, 2008년 지정) 등과도 유사하다. 따라서 고려 후기 13세기의 불상들과 비교된다는 점에서 대략적인 제작 시기를 추정해 볼 수 있다.
강화 청련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13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되는 불상이다. 특히 고려 후기 불교 조각의 단정하고 세련된 조형미를 잘 반영한, 고려시대 불교조각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