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군서(君瑞), 호는 정양당(靜養堂).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李補)의 5대손이며, 영신수(永新守) 이이(李怡)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명원군(明原君) 이호(李顥)이고, 아버지는 첨지(僉知) 이극성(李克成)이며, 어머니는 임형수(林亨秀)의 딸이다.
1595년(선조 28)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01년 10월 양주의 경차관(敬差官)으로 있으면서 양전(量田)을 옳게 시행하지 못하여, 영사(領事) 윤승훈(尹承勳)으로부터 탄핵을 받았다. 그 해 11월 호조정랑에 임명된 뒤 사간원정언을 거쳤다.
12월 정인홍(鄭仁弘)의 문객인 문경호(文景虎)가 상소를 올려 기축년(1589) 역옥 때 최영경(崔永慶)의 옥사에 성혼(成渾)이 간여하였다고 하면서 죄를 성혼에게 돌리자, 헌납 이진빈(李軫賓), 정언 김지남(金止男)과 함께 이를 논박하다가 교체되었다.
1604년 9월 예조좌랑, 10월 평안도도사에 임명되었다. 1616년(광해군 8) 내자시정으로 있을 때 사헌부로부터 사람됨이 우열(愚劣)하여, 일사(一司)의 장관으로는 부적당하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