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하 ()

근대사
인물
조선후기 한성부판윤, 공조판서,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관리.
이칭
여회(汝會)
시호
양숙(襄肅)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11년(순조 11)
사망 연도
1891년(고종 28)
본관
전주(全州)
목차
정의
조선후기 한성부판윤, 공조판서,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관리.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회(汝會). 1863년 고종이 즉위하고 흥선대원군이 집권하자 훈련대장 겸 좌포도대장을 지냈고, 1866년 병인양요 때에는 한성부판윤·형조판서·강화부유수·어영대장·공조판서를 지냈다.

그해 대원군이 천주교도를 탄압할 때 포도대장으로서 교도들을 수없이 학살하였는데, 죄인들을 낙동(駱洞)의 자기 집에서 심문하였으므로 사람들이 이경하를 염라대왕처럼 무서워하여 ‘낙동염라’라는 별칭도 있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공격하고 한강을 봉쇄하자 순무사(巡撫使)로 발탁되어 도성방비의 책임자로 출진하였다. 1882년 무위대장(武衛大將)으로 재직중 임오군란의 책임을 지고 파면되어 전라도 고금도에 유배되었으나, 대원군의 깊은 신임으로 1884년 풀려나와 좌포도대장을 지냈다.

그해 12월에 일어난 갑신정변 때에는 조대비·민비·세자(순종) 등을 아들 이범진(李範晉)의 집에 피난시키기도 하였다. 주로 군사·경찰의 요직을 맡아 치안을 담당하였다. 시호는 양숙(襄肅)이다.

참고문헌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남계집(南溪集)』
『근세조선정감(近世朝鮮政鑑)』
집필자
윤경로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