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의보(儀甫), 호는 두암(竇巖). 경상도 청도 출신. 아버지는 득록(得祿)이며, 어머니는 고성이씨(固城李氏)로 희려(希呂)의 딸이다. 처음 박광형(朴光亨)에게 글을 배웠고, 뒤에 김우옹(金宇顒)·정구(鄭逑)를 사사하였다.
5세에 아버지를 잃고 외가에서 자랐는데, 자질이 총명하여 1584년(선조 17) 향시에서 장원하였다. 1589년 변사(邊涘)의 무고로 정여립(鄭汝立)의 옥사에 연루되어 이듬 해 함경도 경성으로 유배되었다.
유배생활을 하는 도중 관북의 시속·풍물·행사·신앙 등을 조사하여 『관북록(關北錄)』을 저술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특사되었고, 1596년 학행으로 천거되어 공릉참봉(恭陵參奉)에 임명되었다.
이듬 해 정유재란 때에는 「친정소(親征疏)」를 올려 왕이 직접 전지에 나가 왜적의 불의를 토벌할 것을 청하였고, 화의가 진행될 때에는 중국 정강(靖康)의 고사를 들어 강화를 반대하였다. 1599년 집경전참봉(集慶殿參奉)으로 옮겼다가 얼마 뒤 벼슬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왔다.
뒤에 다시 경릉참봉(敬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아니하고, 당시 영남지방의 대학자인 장현광(張顯光)·김부륜(金富倫)·박성(朴醒) 등과 도의의 교유를 맺고 학문을 강마하였다. 뒤에 유림의 천거로 청도의 도림사(道林祠)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두암문집(竇巖文集)』 4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