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화(景和), 호는 성재(醒齋). 광평대군(廣平大君) 이여(李璵)의 10대손이며, 금산군수(錦山郡守) 이중휘(李重輝)의 아들이다.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다.
1689년(숙종 15) 스승 송시열이 사사(賜死)되자 광주(廣州)에 은거하였다. 그 뒤 1694년 사산감역(四山監役)에 임명, 한성부판관에 전보되고, 또 아산현감으로 나갔다가 장악원주부·좌수운(左水運)·군자감의 판관을 거쳐 다시 임천군수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었다.
유애비(遺愛碑)가 세워졌는데, 100년 만에 처음으로 잘 다스려졌다는 칭송이 있었다. 외삼촌인 김수항(金壽恒)이 사사되자 그의 묘문을 짓고는 다시는 글을 짓지 아니하였다. 관직에 있을 때 법을 엄격히 준수하였으며 옥사를 처결함이 매우 공평하였고, 항상 식구처럼 백성을 사랑하였다 한다.
또 효성이 지극한 것으로도 이름이 높아, 5세에 부친을 여의고 계모를 생모처럼 섬겼으며 맏형을 아버지같이 받들었다 한다. 송종운(宋鍾雲)은 이담의 묘갈명에서 특히 집안과 관직에서의 조행(操行)을 들어 ‘참다운 군자’라고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