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의숙(猗叔). 할아버지는 실학자 이식(李植)이고, 아버지는 예빈시정 이신하(李紳夏)이다. 어머니는 교관 신후원(辛後元)의 딸이다. 여주 출생으로 이단하(李端夏)의 문인이다.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모친상에 3년을 시묘하였다. 1704년 음보로 사산감역(四山監役)에 기용되고 이듬해 세자익위사시직이 되었으며, 이듬해 부수(副率)에 올랐다. 1707년 사복시주부가 되고, 이어서 의금부도사가 되었다.
1709년 양구현감이 되어서는 백성을 아끼는 정치를 행하여 백성에게는 너그럽고 공평하게 대하고, 토호와 아전들의 횡포를 막아 죄를 범하는 자는 지위의 고하와 권력의 유무를 막론하고 엄격하게 다스렸다. 이듬해 노모를 봉양한다는 구실로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돌아오자 그 곳 주민들이 불필요한 노역에 혹사당하는 것을 보고 순영(巡營)에 건의하여 부역을 감면시켰다. 1712년 의영고주부(義盈庫主簿)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일찍이 금강산에 들어갔다가 김창흡(金昌翕)과 설악에서 만나, 시문을 논하다가 막역한 친구가 되었다. 시를 잘하여 청이간담(淸易簡淡)하면서도 격에 잘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