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태관(泰觀), 호는 감호(鑑湖). 아버지는 공조참의 이윤우(李潤雨)이며, 어머니는 인천채씨(仁川蔡氏)로 채응린(蔡應麟)의 딸이다. 정구(鄭逑)와 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경사를 깊이 연구하고 문장이 뛰어 났으나, 병자호란을 겪은 뒤에는 벼슬에 뜻이 없어 과거를 보지 않았다. 1649년(인조 27) 향천(鄕薦)으로 성현도찰방(省峴道察訪)이 되어서는 선정을 베풀어 청덕비가 세워졌다.
1652년(효종 3) 장흥고·선공감의 직장 등을 역임하고, 1660년(현종 1) 연원도찰방(連原道察訪)을 지냈다. 그 뒤 향리로 돌아와 향약을 제정, 시행하고, 사양서원(泗陽書院)을 세워 후학을 교육하였다. 저서에는 『감호당집(鑑湖堂集)』 3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