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이유(李瑠), 자는 언진(彦珍). 할아버지는 성종의 형 월산대군(月山大君)이고, 아버지는 성종의 셋째 아들 계성군(桂城君)이다. 어머니는 중종의 첫째 계비인 장경왕후(章敬王后)의 아버지 윤여필(尹汝弼)의 딸이다.
1545년(명종 즉위년) 인종의 외척 대윤 윤임(尹任) 일파와 소윤 윤원형(尹元衡) 일파 사이에 정권쟁탈전이 벌어졌을 때, 윤임을 축출하기 위하여 경기감사 김명윤(金明胤)이 밀계를 올리기를 “인종의 병환이 위중하자 윤임은 자신의 신변에 위협을 느껴, 임금의 아우(명종)를 추대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자신의 생질인 계림군(桂林君) 유를 세우고자 한다.”고 하였다.
그 일로 윤임이 제거되자, 계림군은 미리 겁을 먹고 양화도(楊花島)에서 배를 타고 도망쳐 황룡산(黃龍山) 기슭에 있는 이웅(李雄)의 집에 이르러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숨어 있다가, 토산현감 이감남(李坎男)에게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어 거열형(車裂刑)을 당하였다.
1577년(선조 10)에 신원되고 종적(宗籍)에 다시 올리게 되었다. 이류의 죽음에 대하여 이중열(李仲悅)은 『을사전문록(乙巳傳聞錄)』에서 “틀림없이 죽을 것을 알고서도 바르게 죽음을 받는 것은 사군자(士君子)도 어려운 일인데, 어찌 한낱 무식한 종친으로부터 바랄 것인가. 이미 헛된 말로 죄를 꾸몄고 또 거짓 자복으로써 형을 정하여 죽였으니 가련한 일이로다.”라고 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