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서(聖瑞). 이구명(李耉命)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양체(李揚体)이다. 아버지는 관찰사 이시만(李時萬)이며, 어머니는 참판 권진사(權盡巳)의 딸이다.
1646년(인조 24) 사마시에 합격하고, 1650년(효종 1)에는 태학생으로서 사림의 문란을 가져온 박세채(朴世采)·김수항(金壽恒) 등의 공관(空館: 捲堂이라고도 하는데 성균관유생들이 불평이 있을 때 일제히 관을 비우는 일) 행위에 대하여 이를 바로 밝힐 것을 상소하였다.
1655년 춘당대문과(春塘臺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정원주서가 되었다. 그 뒤 성균관전적을 거쳐 병조·예조의 좌랑을 역임한 뒤 황해도도사가 되었다. 1664년(현종 5) 사헌부지평이 되었다가, 서경(署經)의 부제(不齊)로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으나 곧 복직되어 고산찰방으로 나갔다.
이어 1667년 개성부경력(開城府經歷)에 부임하였으나 그 해 임지에서 병으로 죽었다. 학문에 유난히 독실하였고 효우와 청렴으로 칭송받았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