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고흥 출신.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 공포 이후 의병이 각지에서 일어나자 1896년 민용호(閔龍鎬)가 중심이 되어 설치한 관동9군도창의소(關東九郡都倡義所)의 의병장이 되어 최중봉(崔重峰) 등과 관동지역의 사림 및 백성들에게 포유문(布諭文)을 보내고 그 기세를 높여 관동9군도창의소의 의병진이 관동지방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그 해 가을에는 관군의 포위망에 싸여 부득이 그 활동을 중지할 수밖에 없었다. 1905년 서울 남산골에서 의병 1,000여명을 모집하여 일본군과 일대격전을 계획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국권이 침탈된 뒤 1913년에 임병찬(林炳瓚)이 중심이 되어 구성한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에서 전라남북도순무중군에 임명되었다. 이후 만주 간도로 망명하여 무장투쟁에 참여하였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