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채 ()

근대사
인물
대한제국기 때, 관동9군도창의소의 의병장으로 활약했으며, 국권 피탈 이후 독립의군부 전라남북도순무중군 등을 역임한 의병장 ·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75년(고종 12)
사망 연도
1940년
출생지
전라남도 고흥군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대한제국기 때, 관동9군도창의소의 의병장으로 활약했으며, 국권 피탈 이후 독립의군부 전라남북도순무중군 등을 역임한 의병장 ·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전라남도 고흥 출신.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 공포 이후 의병이 각지에서 일어나자 1896년 민용호(閔龍鎬)가 중심이 되어 설치한 관동9군도창의소(關東九郡都倡義所)의 의병장이 되어 최중봉(崔重峰) 등과 관동지역의 사림 및 백성들에게 포유문(布諭文)을 보내고 그 기세를 높여 관동9군도창의소의 의병진이 관동지방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그 해 가을에는 관군의 포위망에 싸여 부득이 그 활동을 중지할 수밖에 없었다. 1905년 서울 남산골에서 의병 1,000여명을 모집하여 일본군과 일대격전을 계획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국권이 침탈된 뒤 1913년에 임병찬(林炳瓚)이 중심이 되어 구성한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에서 전라남북도순무중군에 임명되었다. 이후 만주 간도로 망명하여 무장투쟁에 참여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독립유공자공훈록』2(국가보훈처, 1986)
『독립운동사』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한국독립사』(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