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이선(而善), 호는 쌍곡(雙谷). 이집(李濈)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랑 이신충(李藎忠)이다. 아버지는 생원 이계인(李啓仁)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로 첨정(僉正) 이극강(李克綱)의 딸이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외가에서 자랐다. 1590년(선조 23) 생원시에 합격하고, 1601년 식년문과에 장원하여 전적·정언·병조좌랑·삼화현령 등을 역임하였다. 1606년 예조좌랑을 거쳐 정언·지평이 되고, 1613년(광해군 5)에 성천부사로 나갔다가 선조가 임진왜란 때 피란하였던 관사의 화재로 파직되었다.
1618년 천추사(千秋使)로 명나라에 다녀오고, 이듬해 대사간에 승진하였다. 이 때 인목대비(仁穆大妃)는 존호를 삭제당하고 서궁(西宮: 경운궁)에 유폐되어 있었는데, 경상도관찰사 윤훤(尹暄)과 충청도관찰사 이춘원(李春元)이 진선장(進膳狀)에서 폐모에 대한 존칭을 그대로 쓴 것을 묵인하여 준 것이 말썽이 되자 사직하고 물러났다.
그러나 이사경의 역량이 널리 인정되어 다시 승지, 병조·예조의 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청렴하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