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장천(長川). 자는 중유(仲儒), 호는 고산(孤山). 단성 출생. 아버지는 이명충(李命忠)이며, 어머니는 진주하씨(晉州河氏)로 하여정(河汝禎)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체구가 크고 힘이 세어 장재로 지목되었고,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의 병에 한달이 넘게 기도하여 병이 나았다고 한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동(家偅) 100여명으로 의병을 일으켜 정진(鼎津)에 주둔한 곽재우(郭再祐)의 의군에 합류하였다. 1594년 가력(嘉力)에서, 1597년 화왕산성(火旺山城)의 전투에서 공을 세웠으며, 전쟁이 끝나자 군을 해산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1602년 고산정사(孤山精舍)를 지어 후진을 교육하고, 이듬해 강설하는 규정을 만들어 학교의 제도를 확립하였다. 1621년(광해군 13) 임진왜란 때의 전공이 인정되어 훈련부정에 임명되었으나 세상이 시끄러워 부임하지 않았다. 1641년 수직(壽職)으로 승정원좌승지에 올랐다. 뒤에 예안의 청계서원(淸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고산실기(孤山實記)』 3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