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단바탕에 채색. 세로 185㎝, 가로 93㎝. 국립전주박물관 소장.
이상길의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사우(士祐), 호는 동천(東川),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1556년(명종 11)에 출생하여 18세인 1585년(선조 16)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 후 사헌부 정언을 거쳐 광주목사를 역임하였다. 이때 선정의 실적이 높게 평가되어 통정대부로 특진되었다. 그가 벼슬하는 동안 많은 공을 세워 평난공신을 비롯 호성, 정사, 진무 원종 등 여러 공신에 책봉되었다. 1636년(인조 23)는 그의 충성을 가상히 여겨 좌의정을 증직하고 강화도 충렬사에 위패를 봉안케하였다.
「이상길 초상」은 사모의 모정이 낮고 흉배가 없는 담홍색 단령을 입고 모습이다. 공수자세를 하고 교의자에 앉은 좌안칠분면의 전신교의좌상이다. 단령의 트임 사이로 의복이 엿보이는 모양, 족좌대 위에 발을 팔자형八字形으로 올려놓은 모양, 양쪽 어깨의 기울기를 달리하여 반우향의 자세를 안정적으로 표현한 점 등 전반적으로 17세기 공신도상의 특징을 보여준다. 얼굴과 의습의 필선이 긴장감이 떨어지고 다소 도식적인 면모를 보여 사후 초상으로 보인다.
조선 중기 초상화의 전형적 특색을 보인다. 그러나 안면의 세부묘사에 있어서는 중기 초상화법이 이목구비를 선묘 위주로 그려내면서 안면의 도드라진 부위, 즉 골상학(骨相學)에서 말하는 이른바 오악(五嶽)의 중심부위에 옅은 홍기(紅氣)를 삽입시키는 것과는 달리, 이 초상화는 보다 후기의 초상화법을 채택하고 있다.
다시 말해 3양(三陽), 3음(三陰), 누당(淚堂), 와잠(臥蠶)을 경계로 하여 선염기(渲染氣)를 짙게 안배함으로써 안면의 고자세를 나타내려는 도식화된 의도가 강하게 나타나 있어 이상길 재세시의 묘법보다는 좀더 후대의 화법을 보인다.
따라서, 이 영정은 원본을 충실히 모사한 이모본(移模本)으로서, 안면처리에만 이모시의 시대색이 반영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