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영일 출신.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체결되자 고종의 시종관으로 있던 정환직(鄭煥直)이 아들 정용기(鄭鏞基)에게 고향인 영천으로 내려가 의병을 일으켜 산남의진(山南義陣)을 조직하게 하자, 이상호는 김석정(金石井)·이경구(李景久)와 예안·안동지방의 책임을 맡았다.
1907년 입암전투(立巖戰鬪)에서 정용기가 전사하자, 의병을 인솔하여 정환직과 합세하여 청송(靑松)·진보(眞寶)·청하(淸河)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여 전과를 올리고, 소총 80정, 군량미 200석을 조달하기도 하였다.
주방전투(周房戰鬪)에서의 부상으로 은신, 치료중 체포당하였으나 탈옥, 관동지방에서 은거하였다.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