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존중(存中). 정종의 9대손으로, 아버지는 참봉 이문익(李文益)이다.
1608년(광해군 즉위년)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고, 이어 비국랑(備局郎)으로 정승 이덕형(李德馨)·이항복(李恒福)의 공첩(公牒)을 맡아 처리하였다.
그 뒤 도총부도사에 승진하여 경력으로 전직되었다가 문천군수로 나갔다. 북청의 성역(城役)이 있자 병사의 계청으로 중군이 되어 일을 잘 감독하여 통영우후(統營虞侯)로 승진하였고, 또 전선(戰船)을 수리한 공으로 가선계(嘉善階)에 올랐다. 1619년 심하역(深河役) 등으로 요동에 군대가 파병되고 서쪽 변경에 위협이 있자, 만포첨사(滿浦僉使)에 제수되어 상로대장(上路大將)을 겸임하였으나 1613년 계축옥사에 연루되어 삭직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 때 이괄(李适)과 함께 선봉장이 되어 공을 세웠고, 또 강화부사로 나가 수군의 반발을 평정하였다. 이 공로로 자헌(資憲)의 품계에 올라 훈련원도정이 되었다. 이듬해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우방어사로 좌방어사 이중로(李重老)와 더불어, 평산의 저탄(猪灘)에 진을 치고 반군과 대전하였으나 패전하자 물에 투신, 자결하였다.
난이 평정된 뒤 병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충신정문(忠臣旌門)이 세워졌다. 1684년(숙종 10)에 금천의 민충사(愍忠祠)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장(忠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