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구(聖久). 양녕대군 이제(讓寧大君 李禔)의 후손이며, 현감 이원우(李元友)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군수 이곡(李穀)이고, 아버지는 현감 이광후(李光後)이며, 어머니는 안산김씨(安山金氏)로 김취경(金就鏡)의 딸이다.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일찍이 과거를 보기 위하여 공부를 하였으나 광해군 때 과거가 문란하여지자 응하지 않고, 1623년 인조반정으로 새 왕이 등위하자 진사에 오르고 벼슬에 나가 현감에 이르렀다. 1639년(인조 17)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조·병조의 낭관을 역임하였다.
성균관전적을 거쳐 홍산현감으로 나갔다가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 사직하였으며, 복을 끝내고 사헌부지평에 제수되었다. 이 때 김자점(金自點)에 의하여 강빈(姜嬪)의 옥에 연루되어 사직하였다. 숙종 즉위 초 예송(禮訟)이 일어날 적에 송시열(宋時烈)의 편에 서서 기년설을 주장하였다.
또한 붕당을 다스리라는 상소로, 임금의 뜻에 거슬려 정선에서 연풍현감으로 좌천되었다. 그 뒤 사예·장령·필선·헌납·사간·사복시정(司僕寺正)으로 편수관·비국랑관(備局郞官)을 겸하였다.
이어 정평부사를 거쳐 선천부사가 되었으나, 정평부사로 재임시에 일을 잘못 처리하였다는 죄목으로 도성으로 끌려오다 중도에서 병을 얻어 고양여사(高陽旅舍)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