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해(靑海). 자는 일경(一卿). 개국공신 이지란(李之蘭)의 후손이다.
1676년(숙종 2)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고, 훈련원 주부·도총부도사·경력을 거쳐, 고원군수·낙안군수(樂安郡守)·장흥부사가 되었다.
1701년(숙종 27) 나주토포사(羅州討捕使)에 발탁되고 이어 우림위(羽林衛)의 사복장(司僕將)·우후(虞候) 등을 지냈다. 철산부사를 거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체배(遞拜)되어, 임기를 마친 후 선전관에 환배(還拜)되었다. 그 뒤 장단방어사를 거쳤다.
이 후 전라병마절도사에 임명되고 삼도통제사에 승진하였다. 1719년 어영중군(御營中軍)으로 가선대부에 오르고 금군별장 겸 도총부부총관에 전직되었다가, 다시 통제사가 되었다.
1721년(경종 1) 신임사화로 노론의 대신 김창집(金昌集)이 유배도중 통영을 지나자, 이수민은 원문(院門)에 나가 인사를 하고 비장을 시켜 김창집을 호행(護行)하도록 한 것으로 소론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고, 이어 목숨만은 구하여 제주 정의(旌義)에 유배된 지 1년 만에 그곳에서 죽었다.
1725년(영조 1)에 신원되어 용인 굴암(窟巖)으로 환장(還葬)하였다.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정(忠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