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유안(幼安), 호는 성암(惺菴). 전라남도 강진 출신. 이조판서 이후백(李後白)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선경(李善慶)이다. 아버지는 현감 이태길(李泰吉)이며, 어머니는 한일휴(韓日休)의 딸이다.
1624년(인조 2)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 1632년 헌릉참봉이 되고, 다음해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권지부정자가 되었다. 1638년 저작박사·전적에 승진하고, 이어 감찰·병조좌랑·정언을 지냈다.
1642년 재차 전적에 제수되었으나 사은(謝恩)을 마치고 바로 전리(田里)로 내려가, 오직 학문에만 열중하여 아직 이르지 못한 경지를 탐구하는 데 힘썼다. 여러 차례 정언·지평·세자시강원사서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다.
1648년 다시 지평을 제수하자 부득이 서울에 올라와 왕을 배알하였으나 선묘(先墓)에 청가귀천(請暇歸遷)할 것을 상소함과 동시에, 인군의 허심종선(虛心從善)의 도(道)를 아뢰어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무엇보다도 간언을 받아들임보다 중요한 것이 없고, 망국(亡國)의 도(道)는 간언을 거절하는 것이라 하여 공론(公論)을 널리 수렴할 것을 진언하였다.
1649년 성균관직강·사서·지평에 제수되었고, 1653년(효종 4) 사간, 이어 홍문관부수찬에 제수되었으나, 상소하여 이를 사양하고 시사(時事)를 진언하였다. 1654년 홍문관교리·집의·장악원정·사간·부수찬 등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그 뒤 여러 차례에 걸쳐 관직이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경사·성리학에 모두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