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0년(현종 1) 11월 양규(楊規)가 도순검사(都巡檢使)가 되어 흥화진(興化鎭)을 지킬 때 장작주부(將作注簿)로 참여하였으며, 거란 성종에게 올리는 표문(表文)을 작성하기도 하였다.
그 뒤 1012년 6월 좌습유(左拾遺), 1016년 정월 좌보궐(左補闕)에 각각 제수되었으며, 1019년 8월 하정사(賀正使)로 송나라에 다녀왔다. 다음해 정월 기거랑(起居郎)에 올랐으나, 5월 송나라에 사행(使行)하였을 때 욕된 일을 하였다고 하여 유배되었다.
1035년(정종 1) 6월 복직되어 호부시랑(戶部侍郎)으로 거란에 가서 토산물을 바쳤으며, 1047년(문종 1) 7월 예부상서(禮部尙書)로서 서북면추동번병마사(西北面秋冬番兵馬使)에 임명되었다. 1051년(문종 5) 3월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