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수주(樹州: 지금의 경기도 부평)이며, 문하시중 이정공(李靖恭)의 아들이다. 동생 역시 예종 때 문하시중에 오른 이위(李瑋)이며, 처는 평장사(平章事) 김인규(金仁揆)의 누이이다.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아버지의 후광에 힘입어 숙종 때 낭장이 되었고 1106년(예종 1) 10월 낭장으로서 시랑 김보위(金寶威)와 함께 요나라에 사사제사(謝賜祭使)로 파견되었으며, 박승중(朴昇中), 홍관(洪灌) 등과 함께 예종의 근신(近臣)으로 있었다. 그 뒤 재추의 반열에 올라, 1128년(인종 6) 3월에는 검교사도 수사공 좌복야 판예부사(檢校司徒守司空左僕射判禮部事)에 임명되었다가 7월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올랐다.
이보다 앞서 1126년에 처남 김인규가 이자겸(李資謙)의 친당(親黨)으로서 이자겸의 난에 연루되어 지춘주사(知春州事)로 좌천당하자 김인규의 집을 차지하고 재산과 노비를 빼앗았는데, 곧 복직되어 돌아오자 재산을 사이에 두고 다투게 되었다. 이때 아들 이온경(李溫卿)을 시켜 김인규의 모반을 무고하는 투서를 어사대(御史臺)에 던져 넣다가 발각되어 처벌을 받게 되었는데, 동생 위의 외손녀가 인종비인 공예태후 임씨(恭睿太后任氏)였으므로 중벌은 면하고 파면되었으며, 1131년(인종 9) 6월 세상을 떠났다.